1989년 美이민 교사출신 이한탁씨
우울증 딸 치료차 찾은 수양관 화재 딸은 죽고 살해 혐의 이씨는 종신형
지난 5월 검찰 "비과학적 증거"시인 연방지방법원, 무죄석방 판결
친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해온 이한탁(79ㆍ사진)씨가 유죄평결 25년 만에 ‘자유의 몸’이 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연방중부지방법원 윌리엄 닐런 판사는 8일(현지시간) 이씨에게 내려졌던 방화ㆍ살해 혐의에 대한 유죄평결과 가석방 없는 종신형 선고를 무효화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AP통신 등 미국 언론이 전했다.
검찰이 1989년 발생한 사건에 대해 새 증거를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미국 교민사회에서는 줄기차게 결백을 호소해온 이씨가 마침내 누명을 벗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법원이 유죄평결을 무효화한 것은 사건 25년 만인 5월 29일 이씨의 재판에 대한 유효성을 가리기 위해 열린 법원의 ‘증거심리’에서 검찰이 자신들의 증거가 과학적이지 못했음을 시인했기 때문이다. 증거심리를 주재한 마틴 칼슨 예심판사는 본심 판사에게 전달한 권고문에서 “25년 전 이씨의 유죄 판결을 가능하게 했던 방화 수사 증거가 비과학적이고 지금의 수사 기준으로는 인정될 수 없다”며 “그의 형벌과 유죄판결은 무효화돼야 하며, 검찰의 재기소가 없으면 이씨는 석방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씨의 변호인인 피터 골드버그는 다음 주 이씨에 대한 보석을 신청하겠다고 밝혀 이변이 없는 한 이씨는 올해 중 펜실베이니아 주립교도소에서 출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철도고와 연세대를 거쳐 교사생활을 하다가 1978년 뉴욕으로 온 이씨는 맨해튼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며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평범한 이민자였다. 그러나 1989년 7월 29일 큰딸 지연(당시 20세)씨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딸과 함께 펜실베이니아주 먼로카운티에 있는 수양관에 갔다가 화재를 만난 게 그의 인생을 뿌리째 바꿔놓았다. 이씨는 탈출했지만 지연씨는 수양관 내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누전 등에 의한 사고라고 주장했지만 검찰은 방화 혐의를 제기했다. 누전 등 사고에 의한 가능성이 크다는 화재 전문가들의 조사보고서는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고, 결국 “우울증을 앓던 딸과 관계가 좋지 않던 이씨가 건물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질렀고, 그의 셔츠와 바지에 묻어 있는 발화성 물질이 증거”라는 검찰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종신형이 선고됐다.
이씨는 이후 변호사를 네차례나 바꿔가며 항소와 재심을 요청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뉴저지에 거주하는 이씨의 아내도 투병생활을 하는 등 이씨의 삶은 파탄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2012년 제3순회항소법원이 이씨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았다. 뉴욕시 소방국 화재수사관 출신인 존 렌티니 박사가 “이씨의 유죄판결을 이끌어낸 검찰 보고서를 신뢰할 수 없다. 그의 옷에 묻은 발화물질이 모두 다르다”는 보고서를 증거로 제출했고, 항소법원이 하급 법원에 ‘증거심리’를 명령하면서 이씨의 삶은 극적으로 반전됐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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