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은 해소되지 않는다. 내가 부재한 곳을 향하는 마음이어서다. 각성도 상실이 배태한다. 잃어야 그립다. 실존은 개별적이다. 반면 가능성은 보편한다. 혼자 울게 버려둬선 안 된다.
“세월호 100일 추모식에서 ‘동혁이 엄마’를 보았다. (…) 그녀는 세월호의 진실을 알리는 동영상 속에서 자신을 ‘동혁이 엄마’라고 했다. 학생들의 휴대폰 동영상 속에서 자신의 여동생을 걱정하던 남학생이 있었는데 바로 김동혁군이었다. (…) 무대 위에 선 동혁이 엄마는 차돌 같았다. (…) 동혁이 엄마는 아이들이 남긴 동영상을 봐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엄마로서 그 동영상을 차마 끝까지 볼 수 없었다며 울먹였다. (…) 그녀에게 흘러갔을 지난 100일의 시간. 그 어느 때보다도 동혁이 엄마로 살았던 시간. (…) “너희들이 왜 죽어갔는지 엄마 아빠는 끝까지 밝힐 거야”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동혁이 엄마의 목소리는 그 어느 부분보다 힘이 실렸다. 하지만 “보고 싶다, 내 새끼”라고 말하면서 결국 흐느끼고 말았다. (…)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아들을 잃은 뒤에 평생을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았다. 많은 엄마 아빠의 삶이 그렇게 한순간에 바뀌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한겨레 ‘삶의 창’ㆍ하성란 소설가) ☞ 전문 보기
“1997년 이후 계속해서 삶은 힘들고 거칠며 건조해졌다.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 대다수가 1997년생이었다는 게 두고두고 마음에 얹힌 건 그 아이들이 시린 시절에 태어나 맵게 살다가 차가운 바다에서 삶을 마감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 사랑은 그 상대가 부재했을 때 더욱 사무치게 그리운 것이다. (…) 헤어진 연인의 사랑은 다시 회복할 수 있고, 방전된 사랑은 충전할 수 있지만 세상 떠난 자식은 평생 가슴에 묻고 살며 그리워하기에 더 아리다. (…) 그런데 그런 이들에게 대놓고 “누가 죽으라 그랬어?”라거나 "노숙자들처럼" 운운하며 삿대질하는 이들도 있다. (…) 차가운 세상 힘겹게 살았던 젊은 꽃들에게 남은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랑은 삶과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연대이다. 누구나 극한의 처지에 놓일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이 보편성의 바탕이다. ‘어버이’나 ‘엄마’의 이름은 그런 보편성을 지닐 때 진정성과 힘을 발휘한다.”
-사랑으로 연대하라!(한국일보 ‘토요에세이’ㆍ김경집 인문학자) ☞ 전문 보기
비관은 보수의 특기다. 진보의 몽매를 비웃는다. 악의 근절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모두 보균자다. 발병 환경은 저절로 조성된다. 폭력은 자연이다. 평범 극복이 인간의 당면 과제다.
“올해는 참혹한 일이 많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봄을 잃었고, 총기난사 사건과 군 가혹행위로 여름이 지워졌습니다. 독자 모두 마음 깊숙이 분노가 가득하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5일 1200여쪽에 달하는 윤 일병 사망사건을 수사한 군 검찰의 수사기록을 보고 기사를 썼습니다. (…) ‘원래부터 악마는 아니었다’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기사였습니다. (…) 5명의 독자가 ‘가해자 쉴드 치냐’는 항의 메일을 보낸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 ‘한겨레’는 악마의 탈을 쓴 가해자들의 민낯이 궁금했습니다. ‘왜’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 ‘잠재적 위험성’이 있는 사람의 과거는 어땠을까 궁금했습니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니 이 병장의 입대 당시 복무적합도 검사는 ‘양호’였습니다. (…) 본인이 부당한 폭력을 당해봤으므로 내무반을 바꿀 힘을 가진 뒤 내무반 문화를 바꿨으면 좋았을 텐데, 이 병장은 오히려 옛 폭력 문화를 이용했습니다. 관리자의 묵인 아래 나머지 가해 병사들도 이 병장이 만든 폭력의 구조에 갇혔습니다. (…) “군대 시스템이 폐쇄적이라도 모두가 후임을 때리지는 않는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아우슈비츠에서도 끝까지 인간의 품위를 지킨 사람이 있지요. (…) 군은 폭력의 전이가 쉬운 폐쇄적인 조직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개인에게만 폭력의 사슬을 극복하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가해자를 그저 악마화하는 태도는 군대 폭력 문제를 오히려 손쉽게 망각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참으면 윤 일병, 터지면 임 병장(22사단 총기난사 사고 병사)’이라는 안타까운 유행어만큼 입에 담기 무거운 말이 있을까요. 군대와 군대를 닮은 사회에 대안을 찾자고 질문하고 싶었습니다.”
-‘가해자 쉴드 치냐’고 질문한 독자들께(한겨레 ‘친절한 기자들’ㆍ최우리 사회부 24시팀 기자) ☞ 전문 보기
“사람들은 ‘윤 일병 사건’에서 인간 악마를 발견하고 놀라지만, 결코 새로운 게 아니란 걸 알고 있다. (…)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 교수가 이미 40여 년 전 그 유명한 감옥 실험으로 선량한 인간이 악마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하지 않았던가. 그는 스탠퍼드대학에 감옥을 만들어 놓고 24명의 학생을 반으로 갈라 간수와 죄수 역할을 맡겼다. (…) 시키지도 않았건만 간수들은 이내 죄수들에게 가학적이 됐다. (…) 짐바르도의 실험은 30여 년 뒤 이라크에서 실제상황으로 재연된다.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에서 미군들이 이라크군 포로를 학대하는 사진에 전 세계가 경악했다. (…) 미군 당국은 이들 가해병사를 몇몇 ‘썩은 사과’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짐바르도는 성한 사과도 상하게 만드는 ‘썩은 상자’에 눈을 돌렸다. 도사린 위험, 열악한 근무환경, 상관의 리더십 부재와 함께 학대문화를 생산하고 지속하도록 작용한 내부 시스템 말이다. 그것들이 평범한 인간에게 악마의 옷을 입히는 ‘루시퍼 이펙트’라는 것이다. (…) 다행히 짐바르도는 이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한다. 해답은 건너편에 있다. 평범한 사람이 악마가 될 수 있듯, 영웅도 특별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란 얘기다. 그릇된 상황과 시스템에 대부분 순응할 때 이에 저항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그래서 늘 존재한다. (…) 하지만 잠재력만 기대해서는 해결 난망일 터다. 그런 소수를 희생양으로 만들지 않고 그들의 행동을 고무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내 마음 속의 루시퍼(8월 8일자 중앙일보 ‘분수대’ㆍ이훈범 국제부장)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