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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경기부양책이 일본식 불황 막는다?

입력
2014.08.08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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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취임 후 강력한 경기부양 의지를 밝히며 일본식 장기불황 가능성을 거론했다. “한국경제가 이대로 가다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결연한 선언이 이어졌다. 그는 “관행적, 도식적 정책대응으로는 위기를 넘길 수 없다”고 단언했다. “지도에 없는 길도 마다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그 결과가 건전성에 연연하지 않는 확장적 재정운용, 가계부채 팽창 우려를 무릅쓴 대대적 신용완화, 투자촉진을 위한 친기업적 세제지원 등이 망라된 최근의 정책 시리즈다.

증시와 부동산 시장도 호쾌한 정책 드라이브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왠지 맨송맨송하기만 했던 전임 경제팀에 비해 숨이 탁 트인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경기부양책만으로 일본식 잃어버린 20년을 피해갈 수 있을까? 일단 돈 풀고 펌프질 열심히 하면 장기불황의 먹구름이 걷히고 새로운 도약의 지평이 열리게 될까? 미안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일본이 그랬다. 사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과감한 부양책을 시도하지 않아 닥친 게 아니라, 오히려 내실 없는 부양책 때문에 깊어진 측면이 크다.

‘헤이세이(平成) 대불황’이라고도 하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1991년이 기점이다. 그러나 그 뿌리는 85년 플라자합의에 닿아 있다. 플라자합의는 당시 막대한 무역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G5 국가들이 인위적 시장개입을 통해 달러를 약세로 돌리고 엔을 강세로 밀어 올리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일본은 85년 달러 당 238엔 대였던 엔 환율이 89년 128엔 대까지 하락하는 초(超)엔고 추세에 직면하게 됐다. 세계시장을 파죽지세로 점령해 나가던 수출이 엔고로 급랭하면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1년 만에 6%대에서 2%대로 급강하 했다. 극도의 초조감이 일본을 휘감았다.

일본 정부가 강력한 경기부양에 들어간 게 그때다. 초저금리와 대출확대 같은 금융완화책이 핵심이었다. 초저금리는 일본 내 자금의 해외 유출을 통해 엔고 추세를 완화시키고, 막대한 돈을 시중에 풀어 성장을 자극할 것이었다. 서민들에게 수십만원대의 소비쿠폰을 지급하기도 했다. 돈 풀기의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니케이평균주가는 3만8,000선까지 치솟았고, 부동산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경기부양책은 성공한 듯 보였다. 하지만 착시였다. 풀린 돈이 생산에 투입되지 않고 주식과 부동산에 몰리면서 거대한 거품만 형성된 것이었다.

거품은 스스로 크기를 조절하지 못하고 끝까지 부풀다가 터져버려서 거품이다. 91년에 경기 과열을 잡기 위해 대출규제와 금리인상을 단행하자, 일본의 경제거품은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거품이 터지자 그 동안 헛된 행복의 대가라도 치르듯, 더 가혹하고 기나긴 불황의 터널이 시작됐다. 그게 잃어버린 20년이 됐다.

일본 경기부양책의 부작용을 들어 우리 부양책이 잘못했다는 얘길 하려는 게 아니다. 불황이 닥치면 경기부양책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그건 응급처치 같은 거다. 단기적으로는 효과도 확실하다. 다만 부양책의 효과는 경제살리기의 ‘마중물’에 불과할 뿐이고, 산업구조의 질적 혁신과 병행되지 않는 한 나중에 더 큰 휴유증만 남기기 십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해두고 싶다.

사실 우리 경제는 여전히 경제시스템의 혁신이 절박한 상황이다. 전자 자동차 철강 조선 해운 등 주요 제조 및 수출 산업이 이미 오래 전부터 위기에 빠졌거나,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다. 경제의 룰을 다시 짜기 위한 규제개혁도 시급하고, 고령화 등 급속한 인구구조의 변화에 맞춘 선제적 조치도 필요하다. 곳곳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관료시스템 개혁도 서둘러야 한다.

그나마 착실하게 구조조정을 했다는 일본이 저 정도다. 반면 우리 경제는 김영삼 정부 시절 ‘신경제 100일 작전’ 같은 헛된 부양책으로 타이밍을 놓친 이래, 제대로 시스템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부양책의 후유증은 일본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의 성패는 이번 부양책에 따른 단기적 성장효과가 아니라, 산업구조조정의 성공 여부와 규제ㆍ관료개혁 같은 쪽에서 결판날 것이다. 부양책에만 힘 쓸 게 아니라, 전략적 개혁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이유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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