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들의 은폐 공모로 묻힐 뻔했던 육군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사건은 같은 부대에 근무하는 병사의 제보가 있었기에 드러나게 됐다. 구타당한 윤 일병이 앰뷸런스에 실려간 뒤 가해자 중 한 명으로부터 폭행 사실을 들은 병사가 이를 부대장에게 알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족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는 등 적극적으로 진상규명에 나서고 시민단체까지 가세해 실상이 드러날 수 있었다.
국방부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군 복무 중 사망자는 연 평균 126명이다. 자살로 분류된 사망자가 절반을 넘고 나머지는 안전사고와 폭행 등이다. 이 가운데 자살이나 단순 사고로 처리된 사망 사건의 사인이 의심스러운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6일 국방부 청사 앞에는 피해 유족들이 모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광진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으로 사망 후 1개월 이상 지났는데도 군에서 보관하고 있는 시신과 유골의 수는 180구에 이른다. 유족들은 장례를 치르면 진상규명을 위한 유일한 증거가 사라질 지 모른다는 마음에 시신을 찾아가지 않고 있다. 아들이 총기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군 당국의 발표를 믿지 못해 7년 넘도록 시신을 병원 냉동고에 보관한 채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부모도 있다.
유족들이 군 당국의 조사결과를 믿지 못하는 것은 군이 수사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등 조사를 투명하게 진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윤 일병 사건에서 보듯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병영 분위기로 은폐가 용이한데다 간부들도 자신들의 신상과 직결돼있어 적극적으로 사인을 규명하지 않을 가능성이 상존한다. 유족들이 재수사를 진정하면 “수사에 문제가 없다”는 판에 박힌 말만 돌아올 뿐이다.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자살ㆍ의문사 사건 조사를 군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의문사 조사를 위한 상시 기구를 만들고 수사 과정에 외부 인사를 포함시켜 객관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6년부터 2009년까지 한시적으로 활동했던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회 등 외부의 감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현재 국민권익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 등 감시기구 역할을 하는 곳이 있지만 제대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10여년째 군의 반대로 도입이 미뤄지고 있는 ‘국방 옴부즈맨(국방감독관)’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독일의 경우 국방 옴부즈맨이 국회에 소속돼 군대 내 인권과 안전, 복지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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