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난사 이어 집단 괴롭힘 희생...
끝없이 이어지는 대형 사고에도
서점에는 군대 생활 백서 수준 책뿐
한국 군대문화의 근원부터 파헤친
권인숙 교수의 '대한민국은 군대다'
부조리한 현실 이해하는 데 도움
푸른 옷을 입은 한 젊은이가 또 비명횡사했다. 선임병들의 집단 따돌림과 구타가 낳은 희생이다. 6월 강원도 전방부대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고가 남긴 파장에 충격을 더했다. 국민은 분노한다.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은 좌불안석이다.
건국 이후 징병제를 고수해온 국가의 젊은이들에게 군복무는 숙명이다. 한 해 입대하는 젊은이가 30만명이고 이들의 가족과 연인과 친구들만 포함해도 군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사람이 숱하다. 군대 안의 사건 사고로 목숨을 잃는 군인들도 적지 않고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지대한데 출판계는 그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대형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해보면 군대 관련 서적은 대부분 일종의 자기개발서다. 입대 예정자들이 군대에서 겪을 수 있는 고민과 애로사항을 극복할 방법을 전하는 ‘군대 심리학’(책이 있는 풍경 발행)이나 군생활을 안내하는 ‘군대생활 매뉴얼’(미래의 창 발행), ‘군대 가기 전에 꼭 알아야 할 것들’(유토피아 발행) 등이 대표적이다. 인생 선배들이 군생활이 자신들의 삶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설파하는 ‘내 꿈은 군대에서 시작되었다’(샘터 발행)와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군대에서 배웠다’(다산라이프 발행) 같은 ‘군 예찬서’도 있다. ‘내 아들 군대 갔어요’(시간의 물레 발행ㆍ부제는 ‘내 남친도 갔어요’다)처럼 사회에 남은 자들의 행동 요령을 알려주는 실용서도 눈에 띈다. 군대가 사회생활을 위해 꼭 다녀와야 할 곳이면서도 생활하기 녹록하지 않은 곳임을 책 제목들은 암시한다.
군대가 한국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진지하게 파헤친 책은 찾기 쉽지 않다. 군에서 대형 사고가 끊이지 않으나 군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적시한 서적도 별로 없다. 한국사회 내 군대문화의 부정적 요소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높으나 무엇이 왜 어떻게 나쁜 영향을 주는지 접근하는 책도 찾기 어렵다. 그나마 권인숙 명지대 교수의 ‘대한민국은 군대다’(2005년 발행)가 한국사회에 뿌리내린 군대문화의 원류를 찾는다. 이 책은 의도치 않게 출판계가 군대의 실상을 외면하는 이유 또한 추론케 한다.
책은 여성학의 관점에서 한국의 군사주의와 국가주의를 들여다본다. 특히 학생운동에 드리운 군대문화의 그림자를 조명한다. 학생운동의 폭력성과 내부의 권위주의, 위계질서, 남녀 역할의 구분 등에 군사주의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따진다.
저자는 한국민은 일제 식민지체제와 두 차례의 전쟁(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강한 국가주의 사회에 대한 열망이 컸다고 분석한다. 이런 열망 때문에 평화운동은 배척됐다. “사회 전체적으로 깊숙이 군사화가 진행되었다”(53쪽). 징병제가 군사주의의 핵심이었다. 징병제로 남성을 중심에 둔 국민 정체성이 형성됐다. 1980년대 한국사회의 변혁을 주도한 운동권조차 군사주의의 자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군사화가 활발히 진행된 1970~80년대 청소년기를 보낸 1980년대 운동권은 개인보다 집단을 절대적으로 우선시 했다. 운동권 안에서 위계 문화가 별 의문 없이 받아들여진 이유다.
책은 뒷부분에서 군대 안 남성의 남성에 대한 성폭력에도 주목한다.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군대에서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15.4%였다. 피해자는 많아도 사회적으로 부각되지 않은 이유로 책은 군대의 조직 우선주의를 꼽는다.
안보를 위해 군대는 필요악이라는 시각은 군대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집단의 가치를 위해 몇몇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논리는 한국 사회의 묵계였는지 모른다. 출판계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사건이 터지고 희생이 잇달아도 군대의 부조리한 현실은 요지부동이다. ‘대한민국은 군대다’는 군사주의의 음습한 이면을 제대로 들춰내지 못하는, 군사화된 한국사회에 대한 도발이자 경고장이라 할 만하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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