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캐럴 지음ㆍ박경선 옮김
동녘ㆍ660쪽ㆍ2만5,000원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출동이 한 달째 이어지며 사망자만 2,000명에 이르고 있다. 인간에게 행복한 삶을 안내해야 할 종교가 도리어 지옥 같은 삶을 만드는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러한 모순을 상징하는 곳이 성스러운 순례지가 존재하는 예루살렘이다. 한때 가톨릭 사제였던 저자가 10년 넘게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지도자들의 연례 모임에 참석하며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폭력과 학살의 요람이 된 예루살렘의 뿌리를 추적했다.
‘예루살렘, 예루살렘: 어떻게 이 고대 도시가 현대 세계를 불붙게 했나’라는 원래 제목으로 2011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종교의 기원을 추적하는 것부터 시작해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의 탄생, 이 도시를 둘러싼 폭력의 기나긴 역사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써내려 간다.
사해와 지중해 사이 3분의 1 지점쯤에 위치한 예루살렘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탄생한 곳으로 서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5,000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예루살렘은 순례자와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관광 도시다. 저자가 예루살렘을 처음 방문해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을 둘러본 뒤 받은 첫 인상도 “관광객들에게 바가지를 잔뜩 씌우는 관광명소”였다.
책은 두 개의 예루살렘을 다룬다. 땅의 예루살렘과 하늘의 예루살렘,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지리상의 예루살렘과 메시아 국가라는 상상과 이상 속의 예루살렘, 유럽의 예루살렘과 이슬람의 예루살렘,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
캐럴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온갖 갈등의 근원을 이해하려면 종교의 기원과 인간의 폭력적 본성의 상관관계부터 짚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생존을 위해서는 폭력이 불가피하다는 인식과 폭력에 따르는 지적ㆍ도적적 고민에서 종교가 생겨났다고 믿는다. 성서 속 이야기들이 품고 있는 폭력적 성향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저자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에게 선택된 민족으로 영광을 입는 구조 자체가 갈등의 불씨라고 해석한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종교 전쟁은 예수 탄생 이후부터 1,000년 넘게 극렬하게 반복됐다. 로마의 유대인 탄압과 예루살렘 성전 점령, 유대인의 분열과 기독교인의 예루살렘 탈환, 이슬람 세력의 예루살렘 점령, 서유럽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을 빼앗기 위해 벌인 십자군전쟁과 무슬림 학살, 이슬람 지도자 살라딘의 템플기사단 대파와 예루살렘 무혈입성….
예루살렘은 살라딘에게 점령된 12세기부터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20세기 초까지 이슬람의 땅이었다. 유럽의 종교적 갈망과 결핍을 자극하는 상징이었던 것이다. 1ㆍ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예루살렘은 다시 갈등의 전쟁터가 됐다. 연합군을 대표해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영국이 손을 떼자 유럽에서 흘러 온 유대인들이 아랍인들을 내쫓고 독립국가를 만들었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와 제국주의적 인종주의를 품은 서구 문명이 제3자이면서도 뒷짐지며 군림하는 사이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극단적인 저항과 이스라엘의 보복은 조금도 해결되지 않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저자는 지난 2,000년간 열한 차례나 지배 세력이 전복되며 극단적 폭력을 사용했던 종교 전쟁의 현장인 예루살렘이 서구 세계에서 종교의 외피를 두른 폭력이 일어나는 모든 길의 출발점이자 귀착점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가톨릭 교인인 저자는 올바른 종교에 대해 설파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죽음 대신 삶을 찬미하는 종교, 타자를 끌어안고 사랑하는 종교, 구원이 아닌 계시에 관한 종교, 강요하지 않는 종교, 종교가 세속적일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종교. 다시 말해 “‘나쁜 종교는 존재하기 마련이고 순결한 종교 따위는 존재할 수 없음’을 이해하는 종교가 바로 좋은 종교”라는 것이다. 저자는 사랑이라는 태고의 법칙을 어기게 만드는 신앙은 바뀌어야 하고, 폭력을 낳는 종교는 개혁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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