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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소설가, 마이크를 잡다.

입력
2014.08.0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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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지 않을 때 소설가가 마냥 노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회사에서 사무원으로 근무하고 또 어떤 사람은 가정주부로 살며 또 어떤 사람은 신문이나 잡지 같은 곳에 다른 글을 쓰기도 한다. 소설 이외 모든 글을 ‘다른 글’이라 부르는 것은 소설 쓰는 자들의 일상적 어법이다. 무엇을 하든 소설가의 무의식은 중얼거린다. 다 소설을 위해서야. 이 일이 언젠가는 내 소설에 도움이 될지도 몰라.

지난 겨울 마침 소설을 쓰고 있지 않을 때, 한 인터넷서점으로부터 팟캐스트 진행을 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책 전문 팟캐스트를 새로 기획하는 중이라고 했다. 느닷없었다. 정중히 거절하려는 찰나 내 안의 누군가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어쩌면 소설에 도움이 될지도 몰라. 그로부터 한 달 뒤, 나는 후미진 지하녹음실에 앉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낭만서점 1회 시작합니다.”

팟캐스트를 시작하고 나서야 팟캐스트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되었다. 팟캐스트(Podcast)는 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이 ?결합되어 생겨난 신조어이다. 이 용어는 2004년부터 사용되었고 우리나라에는 2009년 아이폰이 들어오면서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대중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것은 2011년 '나는 꼼수다' 열풍이 불면서부터다. 전 국민이 스마트폰 하나씩 들고 다니게 됐을 정도로 급속하게 스마트폰이 보급되던 시점과 맞물린다. 팟캐스트는 쉽게 말해 웹에서 들을 수 있는 라디오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존 라디오방송과 첫 번째 차이점은 청취자가 프로그램 송출 시간에 맞춰 들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MP3플레이어 스마트폰 등을 통해 구독등록만 해 놓으면 자동으로 업데이트된다. 청취자는 원하는 방송을 다운로드 받아두었다가 자신이 원할 때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즉 라디오의 생명이라고 여겨지는 실시간성을 위반하는 라디오인 셈이다.

두 번째 차이점은 ‘누가 만드는가’이다. 팟캐스트는 그야말로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마이크 한 대만 있으면 된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팟캐스트의 결정적이고 혁명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라디오 방송이 대형방송국에 고용된 전문가들에 의해 제작되는 것과 달리 팟캐스트는 일반인들이 가상의 청취자를 상상하여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대로 녹음하여 내보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팟빵에 등록된 수천 개의 팟캐스트 대부분이 이런 형식이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1인 미디어 시대의 본격 개막’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내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낭만서점'의 경우에 온라인서점에서 운영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모든 기획과 제작은 프로듀서 한 명과 진행자 두 명에 의해 이루어진다. 우리 셋이서 매회 주제와 책을 정하고 평소 만나고 싶었던 저자를 초대해 재미있게 수다를 떤다. 대본도 없고 녹음이 세 시간 넘게 이어질 때도 많다. 좋아하는 책에 대해 신나는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나중에는 마이크가 앞에 있다는 사실도 잊는다.

녹음실이라기보다는 대학 동아리방에 가까운 우리만의 작은 스튜디오에 앉아있다 보면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볼륨을 높여라'(알란 모일 감독, 1990년)가 떠오르곤 한다. 주인공 마크는 내성적인 소년이다. 그러다 우연히 아마추어용 무신통신기를 갖게 되고 그 앞에서 가둬두었던 혼자만의 말을 쏟아낸다. 누가 듣고 있으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는 라디오채널을 통해 수신되고 있었고 많은 젊은 친구들이 그것을 녹음하여 듣고 있었다. 어느새 마크는 밤 10시만 되면 등장하는 해적방송의 디제이 해리가 되었고, 그의 인생은 조금씩 변한다.

내가 팟캐스트를 시작한지 6개월째다. 아직은 내 인생의 무엇이 바뀌었는지 잘 모르겠다. 이 일이 나중에 소설쓰기에 어떤 도움을 줄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런 말은 할 수 있다. 6개월 전 나는 한 인터뷰에서 독서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책 전문 방송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비장하게 말했었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었다. 우리만의 방송을 만드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을지 미처 몰랐다. 팟캐스트라는 미디어가 없었다면 절대로 몰랐을 일이다.

정이현 소설가

* 소설가 정이현씨가 매주 토요일 게재되는 ‘문화산책’의 필진으로 새롭게 합류했습니다.

정 소설가는 2002년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제1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달콤한 나의 도시> <말하자면 좋은 사람> 등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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