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뜰'이란 의미의 킬링필드(Killing Field)는 1975년~1979년 사이 민주 캄푸차 정권 시기에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주(붉은 크메르)라는 무장단체에 의해 양민 약 200만명을 학살한 20세기 최악의 사건 중 하나를 말한다.
1975년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이던 크메르루주(붉은 크메르) 정권이 론 놀 정권을 무너뜨린 후 1979년까지 노동자와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최대 200만 명에 이르는 지식인과 부유층 및 노동자와 농민 부녀자와 어린이까지 학살했으며 크메르루즈 정권은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은 캄보디아 공산동맹군에 의해 전복되었다.
이들의 만행은 1980년 뉴욕타임스에 실린 캄보디아 뉴욕타임스 특파원 시드니 쉔버그의 글, '디스프란의 생과 사(한 캄보디아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고 쉔버그는 이 기사를 통해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이를 토대로 학살된 양민이 매장된 곳을 뜻하는 <킬링필드>라는 제목의 영화가 제작되기도 하였다.
2011년 11월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가 공동설립한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는 크메르루즈 정권 핵심인사 4명인 이엥 사리 당시 외무장관(2013년 3월 노환으로 사망),크메르루주 2인자였던 누온 체아 전 공산당 부서기장, 키우 삼판 전 국가주석, 렝 티리트 전 내무장관에 대한 새판을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 고령인데다 건강 문제로 수차례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최종 판결을 받기 전 사망할 수 있다는 우려 및 크메르루주 전범 재판소 직원들의 파업이나 예산 부족으로 심리 중단 등 파행이 빚어 전범들을 단죄할 수 있을지 의문을 낳아왔다.
실제로 전범 4인 방중 이엥 사리 전 외무장관은 2013년 3월 사망했고, 티리트 당시 사회장관 역시 치매를 앓아 재판에서 배제되었지만, 결국 크메르루주 정권이 베트남군의 공세로 붕괴된지 35년만인 2014년 8월 7일 핵심 전범 2명에 대해 법정 최고형인 종신형을 선고 받게 되었다.
재판부가 2년여의 심리 끝에 이날 내린 판결은 강제이주 등 반인륜 범죄 혐의에 대한 것이다. 집단 학살 혐의에 대한 2차 재판은 올 연말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