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꼬드김에 수십번 돌려보며 독학, 10회 걸쳐 필로폰 100g 제조·유통
자가 테스트도… 수익 한푼도 못 받아
“영어에 능통한 형이 미국 드라마 보고 (마약을) 만들면 우리가 팔게. 한몫 벌자.”
박모(33)씨는 지난해 6월 혼자 사는 인천 남동구 아파트로 찾아온 초등학교 후배 김모(30) 쌍둥이 형제의 말에 솔깃했다. 미드에 나오는 마약 제조법을 따라 필로폰을 직접 만들어 팔자는 제안이었다. 대학 중퇴 뒤 10년 넘게 무직이면서도 평소 영어 공부만은 게을리하지 않았던 박씨는 생활비를 해결하려 고개를 끄덕였다.
마약 경험도 없던 박씨는 곧장 미드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를 수십 번 보며 필로폰 제조법을 독학했다. ‘브레이킹 배드’는 폐암 말기인 화학 교사가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마약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다. 난해한 부분이 나오면 박씨는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영문 마약제조 설명서를 참고했다.
그는 서울 종로 일대를 돌며 제조기구를 사들인 뒤 방독마스크를 낀 채 작업에 착수했다. 자신의 팔에 여섯 차례나 주사하는 테스트도 거쳤다. 결국 박씨는 한달 만에 아세톤과 염산 등 10여가지 시료를 섞는 식으로 총 10회에 걸쳐 필로폰 100g(3억3,000만원 상당)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는 3만여명이 동시에 1회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이 필로폰은 김씨 형제와 또 다른 지인 이모(41)씨가 각각 50g, 30g씩 맡아 판매했다. 나머지는 박씨가 투약하거나 보관하다가 경찰에 압수됐다.
이들은 지난달 28일 첩보를 입수한 경찰이 아파트 작업장을 급습하면서 덜미를 잡혔다. 박씨는 마약 판매수익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쇠고랑을 찼다. 조사결과 김씨 형제는 애초에 박씨와 돈을 나눌 생각이 없었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박씨와 김씨 형제, 이씨 등 4명을 구속했다고 7일 밝혔다. 경찰은 이들에게 마약을 구입한 이들을 쫓고 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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