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다섯 명의 화가들은 성이 다 달랐다. 박씨, 황씨, 장씨, 노씨, 마씨였다. 성씨만으로 구별해 부를 수 있으니 그만이었다. 박씨도 다섯 명의 간판장이 중의 하나일 뿐 그만의 특색이나 사건으로 인상에 남을 만한 건수는 없었다. 나는 박씨가 두툼한 화집을 끼고 나오는 걸 보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꼴값하고 있네. 화집만 끼고 다니면 간판장이가 화가 되나.’(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1931~2011)와 박수근(1914~1965). 한명은 1980년대 이후 한국 문학을 이끌었던 여성 작가요, 또 한 명은 회백색 화강암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질감과 단순한 검은 선의 기법으로 서민들의 소박한 생활상을 화폭에 담았던 화백이다. 나이가 삼촌과 조카뻘 정도 차이 나는 두 분은 한 때 직장 동료였다. 그것도 박 작가가 자전적 소설에서 소개했듯이, 처음에는 나이가 훨씬 어린 20대 여성이 중년에 다다른 박 화백을 ‘박씨’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물론 진면목을 알아본 뒤에 작가는 화백을 깎듯이 모셨다고 한다.
박 작가가 남긴 글에 따르면 두 분은 6.25 동란 직후 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 건물에 있던 미 8군 메인 피엑스(PX) 초상화부에서 일했다. 사후(死後) 작품 가격이 호당 3억원(30만달러)까지 치솟은 대 화가는 개당 3~6달러를 받고 미군 초상화를 그렸고, 단숨에 읽히는 날렵한 문체로 유명한 작가는 문법도 맞지 않는 마구잡이식 영어로 초상화 고객 유치 영업을 해야 했다. 나중에 문단과 화단을 이끈 한국의 큰 예술가들이 한국 현대사의 가장 고단했던 시절, 박 작가 표현대로 ‘양키 턱찌끼’로 연명했던 셈이다.
60여년전과 비교하면 훨씬 ‘먹고 살만해진’ 2010년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두 대가의 황당하고 슬픈 일화는 한계상황에서 벌어진 특이한 사례쯤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대단치도 않은 경제적 이득을 체면이나 명분 보다 앞세우는 현상은 지금도 여전하다.
대표 사례가 지난해 이맘때 벌어진 세금파동이다. 당시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최초 세제개편안에는 연봉 4,000만~7,000만원 샐러리맨에게서 월 1만3,000원(연간 16만원) 가량 근로소득세를 더 걷는 내용이 포함됐다.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도 사전 협의에서는 ‘큰 방향에서 문제가 없다’고 동의했다. 2012년 대선에서 복지공약을 들고 나온 박근혜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줬던 유권자들이 당연히 그 공약 실현을 위해 세금 부담을 감수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납세자들의 반응은 우리가 기억하는 것처럼 정반대였다. 한 달에 전문점 커피 서너 잔 사먹는 값 밖에 되지 않는 규모의 증세인데도 1,000만명 샐러리맨의 분노가 폭발했다. 의외 반응에 놀란 정치권은 야당부터 태도를 바꿔 중산서민층의 세부담을 가중시킨 기재부를 비난했고, 급기야 사전에 충분히 보고를 받았을 게 틀림없는 박 대통령 마저 ‘원점 재검토’지시를 내렸다.
예상 밖으로 여당의압승, 야당의 참패로 끝난 7.30 재보궐선거도 마찬가지다. 공천 잡음 등 야당이 스스로 평판을 깎아 먹기도 했지만, 국정원 댓글 사건이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등 정의와 명분의 이슈보다 유권자들은 내 살림 걱정에 우선 순위를 뒀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이 불쌍하지만, 그 영향으로 내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 수는 없다’는 의사표현을 한 것이다.
물론 명분보다는 실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는 건 한국만이 아니다. 거액 비자금 은폐 의혹에도 불구하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는 경제적 업적 때문에 대통령 당선이 유력하고, 바람둥이지만 경제는 확실히 챙겼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인기도 미국에서 여전하다.
유권자들이 선거에서 명분보다 실리를 앞세우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표를 먹고 사는 정당과 정치인에게는 선택이 보다 확실해졌다. 명분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면 경제적으로 윤택한 미래를 약속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조철환ㆍ국제부 차장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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