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처럼 애연가의 처지가 딱한 적이 있었나요?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이 그립죠”
알고 지내던 한 흡연자의 푸념 가득한 소리다. 물론 호랑이가 담배 필 리 없지만 애연가인 필자는 관대한 사회분위기에서 여유롭게 담배를 즐기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한껏 묻어남을 느꼈다.
담배의 전래시기는 조선 광해군 때라고 전한다. 그 무렵 담배는 남쪽 나라에서 온 신령스런 풀이란 뜻의 ‘남령초’나 ‘담바고’라고도 불렸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담배를 약초에 버금가는 효능이 있다고 기술했다. 당시는 신분과 남녀, 나이를 불문하고 담배를 피웠다.
이후 18세기말 담배를 피우는 데도 위아래를 정하기 시작했다. 정조 때 북학자 유득공이 쓴 세시풍속지 경도잡지에는 “천한 자는 높은 분 앞에서 담배를 피지 못하며 …(중략)…길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엄하게 다스리고…”라는 기록이 있다. 담배예절이라는 일종의 제약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자유롭게 담배를 피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당시 민중들은 ‘호랑이도 담배 피우던 옛날’로 표현했을지 모른다.
그 시절이 그리운 건 비단 조선후기 때만은 아닌 것 같다. 요즘은 가히 흡연자들의 수난시대라 할 만하다. 수 년 전부터 정부와 금연단체들이 담배 규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흡연이 각종 질병을 유발하고 많은 사회적 비용을 발생케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말부터 충격적인 장면의 금연광고를 선보이고 있다.
국민건강이란 명분을 내세워 보건당국이 추진하는 금연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명분에 사회구성원 다수가 수긍하게 하려면 이를 구현하는 수단 역시 어느 정도의 적정성과 타당성을 갖춰야 한다. 복지부의 이번 금연광고는 이점에서 적잖이 의구심이 든다.
우선 담배는 호불호가 분명히 대비된다. 담배는 합법적 기호품이다. 흡연이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고 불법인 마약류와 같이 다루거나 더 강력한 수단을 통해 흡연폐해를 알린다면 그 적정성과 타당성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필자가 과문천식(寡聞淺識)한지 몰라도 지금껏 마약류 폐해를 알리는 광고 중에서 이번 금연광고만큼 충격적이고 불쾌감까지 든 것은 없었던 것 같다.
한편 복지부는 흡연이 인체에 미치는 폐해를 묘사한 그림을 담뱃갑에 의무적으로 부착하는 법 개정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이른바 ‘경고그림’이다. 그러나 흡연율 감소에 얼마나 기여할 지 알 수 없다. 영국 등 일부 외국에서는 경고그림을 도입한 후 흡연율이 오히려 상승한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12년 콜롬비아 항소법원이 “연방정부(FDA)가 경고그림 도입이 흡연율 감소에 도움이 된다는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만큼 합법적인 제품을 정부의 금연정책 광고판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경고그림 제도를 위헌으로 판결한 사례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 연평균 흡연감소율은 1.42%로 OECD 주요국 평균 0.54%보다 3배나 높은데도 굳이 불쾌감과 혐오감을 유발하는 수단을 선택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충격적인 금연광고나 경고그림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조치가 없어도 상당히 빠른 자연감소 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Irving Janis)와 노마 페슈바하(Noma Feshbach)가 실시한 ‘구강 위생에 대한 실험’ 결과, 불쾌한 내용이 전혀 없는 치아의 성장이나 기능에 관한 강습을 받은 사람들은 충치 말기의 끔찍한 슬라이드를 본 이들보다 훨씬 치아 관리를 잘 했다고 한다. 강한 공포감은 오히려 불쾌감을 주고 사람들은 그 정보에 반감을 가지게 돼 이를 외면하거나 잊어버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거듭 말하건대 정부 당국이 국민건강을 위해 금연정책을 추진하는 것 자체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다만 국민정서를 감안해 흡연자들을 포함한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이 거부감 없이 바로 수긍할 수 있는 보다 합리적 정책구현이 아쉽다. 교통사고를 줄인다고 사고현장의 처참한 사진 공개가 가장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배덕현 한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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