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제조업, 젊은 인재 크게 부족
혁신 없이는 중국 도전에 침몰할 판
이공계 인재육성 시스템 고민해야
“기술력이나 품질에서 무섭게 따라오는 중국이 두렵다. 하지만 진짜 두려운 건 우리의 이병철 정주영처럼 창업 1세대 정신으로 무장한 젊은 기업가들이 중국대륙 전역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제조업 위기론’이 드높은 요즘 재계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우리는 투자처를 찾지 못해 돈을 쌓아놓고 있는데, 중국산업박람회에 가면 기술도 좋고, 도전정신으로 충만한 20, 30대 벤처 기업가들이 넘쳐난다”고 말했다.
지난 50년간 한국을 먹여 살려온 제조업이 고비를 맞고 있다. 삼성전자가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신생 중국업체 샤오미에게 1위 자리를 빼앗겼다. 30년 넘게 세계정상을 달려 온 현대중공업이 2분기에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꼽히는 해양플랜트 부문에서 중국 업체들과의 경쟁으로 실적이 악화, 사상 최대의 적자를 냈다. 한마디로 ‘차이나 패닉’이다.
한중일 3국은 그 동안 자연스럽게 3각 분업구조를 형성해 왔다. 일본이 부품ㆍ소재ㆍ장비 중심의 고급 기술, 한국은 완제품 위주의 고급ㆍ중급 기술, 중국은 저급 기술 및 제품에 각각 특화했다. 완제품만큼은 대부분의 업종에서 한국이 최고였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분업구조가 깨지면서 최근 한중 간 제조업 전반에 걸쳐 전면전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건곤일척의 순간에 여러 주문이 쏟아진다. 지금까지의 캐치업(catch up) 전략에서 탈피해 시장 선도자(first mover)가 돼야 한다, 기존 제조업에서 벗어나 사물인터넷과 웨어러블, 환경과 바이오 등 신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편에선 제조업 주도권이 미국에서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이동했듯, 결국 중국으로 넘어갈 것인 만큼 그나마 경쟁력이 있을 때 서둘러 금융 등을 비롯한 서비스업을 키우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제조업 없이는 한국경제의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제조업을 혁신하고, 제조업에 기반한 서비스업부터 육성하는 게 순서다. 갑자기 서비스업 중심으로 돌변할 수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2008년 금융위기에서 보듯 제조업의 기반이 없는 금융 등 서비스업은 사상누각일 뿐이다.
당장 중국의 도전에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제조업은 조립→부품→소재 순으로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 조립ㆍ완제품 분야는 머지 않아 중국에 자리를 내주겠지만, 지난 50년간 쌓아온 제조업 기반을 바탕으로 일본 못지 않게 부품ㆍ소재 부문에서 우위를 점한다면 앞으로 10~20년을 중국과 경쟁해볼 만하다. 제조업을 혁신할 경우 결코 미래가 비관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문제는 제조업 경쟁력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부터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제조업의 생산여건이 구조적으로 악화하고 있다. 낮은 출산율과 인구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 특히 청년층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에서 경쟁력을 이어가려면 젊은 인력이 필수적인데, 산업현장에 쓸만한 블루 칼라가 없다는 우려가 크다. 조선·자동차 등 국내 간판 제조업의 생산직 평균 연령이 이미 40대 후반이다. 기업이 늙어가는 것보다도 더 큰 재앙은 숙련기술의 세대간 단절이다.
1990년대 국내 조선업계가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정상에 올라선 건 1970년대부터 공고 등에서 배출된 인력들이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덕분이다. 현재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이 된 건 7만여명에 달하는 이공계 석ㆍ박사 출신의 힘이 크다. 이들은 1980년대 최고학과였던 전자공학ㆍ기계공학 출신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지금은 우수 이과생들이 의약계열로 빠지고, 공학계열은 차하위 학생이 진학하는 게 현실이다. 특히 IT와 기존 제조업의 융합, 사물 인터넷과 3D프린터 등 미래 산업에 필수적인 소프트웨어 인력은 앞으로 최대 10만명 가량 부족하다는 게 정부 추산이다.
학생들이 의대와 로스쿨로 몰리고,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는 사회는 제조 강국이 될 수 없다. 정부가 인구정책을 포함해 제조업 혁신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면서 인재들이 이공계로 몰릴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전자 자동차 철강 조선 석화 등에서 그 동안 제조업의 성을 잘 쌓아 놓았는데 이를 지킬 병사가 없다.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중국에 따라 잡히기 전에 우리 스스로 무너진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고언이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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