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의 첫 연습. 저 연출이 어떻게 말을 꺼내나 보자며 삼엄한 분위기. 첫 날은 늘 긴장감이 돈다. 간단하게 작품의 취지를 설명하고 배우들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절대로 연기를 가르치지 마시라! 그리고는 바로 약속을 지켜줄 수 있겠냐고 묻고 반대가 없으니 모두가 동의하는 걸로 알겠다고 하고 곧장 읽기에 들어갔다.
그렇게 한 달 가량이 흘러 공연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다. 선배 연기자들이 문득 면담을 요청했다. 후배들의 연기가 마음에 안 들어 이제는 좀 나서서 지도를 해야겠단다. 나는 그네들 말을 다 듣고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단,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연기를 가르쳐 달라고 할 경우는 예외로 두었다. 선배들도 버텼다. 후배들이 연기를 잘 못해서 작품의 품질이 떨어지면 자신들의 이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서로가 한동안 밀고 당겼지만 결국 선배 연기자들의 양보를 얻어냈다.
선배가 후배의 연기를 봐주는 것이 무엇이 나쁘겠나. 그런데 나쁠 공산이 크다. 배려의 마음은 훌륭하나 작품의 일관된 흐름을 끊어놓고 연습 분위기도 험하게 만들기 일쑤다. 왜인고하니 연출이 여러 배우의 합을 이루어가는 일정한 양식과 룰과 과정이 있는데, 그것을 헛갈리게 해서다. 물론 선배연기자는 아니라고 할 것이며 연출의 노선을 이해하는 범위에서 지도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의적 해석이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또 연출의 생각과 같다면 굳이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같은 연기자로서 해줄 수 있는 충고가 있지 않겠는가라고 하겠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많다.
문제는 또 있다. 단순한 지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 가뜩이나 연기가 안 풀려서 스트레스를 받는 후배 아닌가. 거기에다 여러 선배가 다양한 해석을 내놓아 가며 감정선과 기교를 가르치게 되니 막상 당사자는 곤란하기 짝이 없다. 이 선배 말을 듣자니 저 선배의 말과 배치된다. 여러 장면을 관통하는 맥락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게다가 연출이 빤히 보고 있으니 후배 연기자는 복잡한 심경이 되어 정작 배역에 몰입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한다. 딱한 형편이 아닐 수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선배의 연기도 그다지 발전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연기에 참견하느라 자신의 에너지를 흐트러뜨리고 있지 않은가. 제 연기를 평가하고 때로는 일정한 논리로 피력하는 버릇마저 들었으니 연출자와 충돌도 잦다. 논리가 다른 논리를 자꾸 키워 작품의 본질을 못 보게 한다. 연기자는 연기를 할 뿐이고 연출은 다만 연출을 할 뿐이다. 반대로 연출이 연기를 하고 연기자가 연출을 하면 무엇이 되겠나.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한 작품 안에서 배우가 배우를 가르치는 일은 옳지가 않다. 그럼 선배와 후배가 사이 좋게 연기를 가르치고 배우는 방법은 없을까. 단 하나, 후배가 배우기를 원하고 선배도 가르치는 일을 쾌히 즐길 경우는 예외다. 이것은 온전하고 분위기도 돈독하게 만든다. 또 배움의 성과도 좋다.
정말 그것 말고 선배가 후배를 가르칠 다른 도리는 없을까. 경험상, 한 문장씩 주고받는 말은 효과가 있다. 가령 ‘숨을 쉬어’라고 말하고는 선배가 말을 접는다. 그러면 후배가 그 말에 답을 한다. 그러면 다시 선배가 한 문장을 말하는 식이다. 그런데 가급적이면 탁구처럼 한 문장씩으로 대화해야 한다. 그러면 말하는데 묘한 재미가 서로 생겨서 일방적 교육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 문제는 일방향식의 하달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는 선배의 연기를 보면서 후배는 자기 나름대로 분석하고 배우고 깨닫는다. 그 와중에 존경심도 자연스레 생겨난다. 말을 아끼면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노배우의 존재감을 상상해보라. 근사하지 않나. 선배는 선배의 길을 후배는 후배의 길을 갈 뿐이다. 그 길은 다르지 않다. 후배는 제 길이 새로운 길이라고 말할 테지만 결국은 선배의 길을 따라 간다. 다만 선배가 닦아놓은 길이라서 가기가 더 수월할 뿐이다. 세대차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하루가 머다하고 충돌이다. 가르치기보다 배우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좋아지지 않겠나.
고선웅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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