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여행지 못지 않게 여정이 더 인상에 남을 때가 있다. 퐁냐케방 국립공원까지 가는 길이 그랬다. 베트남관광청으로부터 하노이에서 동허이까지 야간 열차를 타고 이동한다는 일정표를 받았을 때 썩 내키지 않았다.
무엇보다 도난에 대한 우려가 컸다. 혹시 장비라도 잃어버리면 어쩌나? 가방을 메두는 체인이라도 살 걸 그랬나? 결과적으로 기우였다. 야간침대열차는 4명이 한방을 쓰는 구조다. 처음 방안에 들어섰을 때는 갑갑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여행가방은 1층 침대 아래로 밀어 넣고, 배낭은 2층 침대 한구석 선반에 올려 놓으니 그럭저럭 아늑한 공간이다. 승무원들이 수시로 복도를 오가며 살피고, 안에서 문을 잠글 수 있게 돼 있어 더욱 안심이다.
다음으로 신경 쓰인 문제는 순전히 ‘베트남은 후진국’이라는 편견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화장실은 깨끗할까? 세수와 양치질은? 침대는 더럽지는 않을까? 모두다 깨끗하고 만족스럽다고 할 순 없지만, 크게 불편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객차마다 세면대가 따로 있고, 좌변기와 남성용 소변기도 하나씩 있다. 대체로 깨끗한 편이다. 아주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별 문제될 게 없어 보였다. 하노이에서 동허이까지는 줄잡아 500km, 12시간이나 걸리는 이유는 마주 오는 열차와 피하기 위해 자주 쉬기 때문이다. 정확히 몇 곳에서 정차했는지 알 수 없지만 쉴 때마다 10분 이상은 되는 듯했다.
가끔씩 지나가는 이동판매대에서 맥주를 구입해 일행들과 즐기다 보니 어느덧 밤이 깊었다. 객차의 연결부위에서 나는 삐걱대는 소리, 레일의 연결지점에서 나는 덜컹대는 소리에 익숙해지고, 좌우로 혹은 앞뒤로 흔들림이 몸에 밸 때쯤 스르르 잠이 들었다.
새벽 5시 조금 넘어 날이 밝아오고 눈이 떠졌다. 초록색 논과 먼 마을 뒤편으로 언뜻 해가 비치는가 싶더니 금새 구름이 짙어지고 실비가 내렸다. 머리보다 더 큰 뿔을 인 물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부지런한 농부들이 소의 목에 멍에를 얹어 논갈이 하는 풍경도 들어온다. 한창 벼가 자라는 논도 있고, 수확이 끝나고 그루터기만 남은 논도 있다. 가끔은 열대우림을 지나고, 더러는 예쁜 농촌 마을도 만난다. 기차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요금에 포함되지 않은 풍경이 덤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12시간 넘게 열차를 타는 것도 처음이고, 편안하게 침대에 엎드려 사진을 찍기도 처음이다. 일정에 여유가 있고 조금은 색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베트남 야간침대열차는 한번쯤 타볼 만한 여정이다. 요금은 66만동, 원화로 약 3만 3000원이다.
동허이(베트남)=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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