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메탈의 제왕 오지 오즈번(66)에 관한 최근 뉴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과학자들이 ‘의학적 기적’을 연구하기 위해 그의 신체를 연구한다는 것이었다. 수십 년간 마약과 알코올 중독에 빠져 살았던 그가 아직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며 행한 연구였다. 별다른 후속 기사가 없었던 걸 보면 기적의 유전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지난해 블랙 새버스 재결성에 참여했던 그가 솔로로 돌아와 자신의 밴드를 이끌고 한국을 찾는다. 9일부터 이틀간 상암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시티브레이크 첫날 헤드라이너(간판급 출연자)로 무대에 오르기 위해서다. 12년 만에 하는 내한공연으로 블랙 새버스 시절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40여년간 발표한 명곡들을 연주할 예정이다. 최근 이메일로 만난 오즈번은 “한국에서 공연을 하게 돼 정말 흥분된다”며 “한국 관객들이 미친 듯 공연을 즐긴다면 나도 미친 듯 즐길 것”이라고 했다.
오즈번이 토니 아이오미(기타)와 기저 버틀러(베이스), 빌 워드(드럼)와 함께 1969년 영국에서 결성한 블랙 새버스는 헤비메탈의 탄생을 알린 전설적 밴드다. ‘워 피그스’ ‘아이언 맨’ ‘체인지스’ 같은 록의 명곡은 지금도 후배 밴드들의 단골 리메이크 레퍼토리다.
오즈번은 1979년 블랙 새버스를 탈퇴했다. 정확히 말하면 해고 당했다. 멤버들과의 잦은 다툼, 약물 중독 등이 원인이었다. 블랙 새버스의 매니저 돈 아든의 딸이자 오즈번의 두 번째 아내가 된 샤론 아든이 술에 찌든 방탕한 로커를 다독여 솔로 활동을 시작하게 도왔다. 1980년 발표한 오즈번의 솔로 데뷔작 ‘블리저드 오브 오즈’(1980)는 ‘미스터 크라울리’ ‘크레이지 트레인’ ‘굿바이 투 로맨스’ 등의 히트곡을 내놓으며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6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명반이다. 2010년 ‘스크림’까지 11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는데 200만장 이상 팔린 앨범이 그 중 일곱 장이다. 오지번이 아내 샤론과 만든 록 축제 ‘오즈페스트’는 1996년 처음 시작한 이후 미국에서 가장 큰 록페스티벌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30년간 솔로로 활동했던 그에게 블랙 새버스 재결성은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지난해 앨범 ‘13’을 내고 7월 4일까지 투어를 했기 때문에 국내에도 블랙 새버스가 내한하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다. 그는 “블랙 새버스와 월드 투어를 마친 상황에서 솔로 공연으로 출연 요청을 받았다”고 했다. “2011년 블랙 새버스 합류를 결정했다. 블랙 새버스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했기에 자연스레 정이 가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앨범 ‘13’을 만든 일이다.”
지난 30여년 간 오즈 오즈번 밴드를 빛낸 건 최정상급의 기타리스트들이었다. 26세의 나이에 요절한 랜디 로즈를 시작으로 브래드 길리스, 제이크 이 리, 잭 와일드가 오즈번과 함께 무대에 올라 팬들에게 전율과 카타르시스를 선물했다. 최근엔 그리스 출신의 거스 지가 2009년부터 함께하고 있다. 오즈번은 “그 동안 뛰어난 기타리스트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다”며 “거스 지 역시 연주력과 쇼맨십이 굉장히 훌륭하다”고 칭찬했다.
오즈번은 지난해 한동안 끊었던 술과 마약에 다시 손을 댔다가 어렵게 끊었다고 해서 팬들을 놀라게 했다. 술과 마약의 유혹을 어떻게 떨쳐내고 있는지 물었으나 그의 답은 ‘노 코멘트’였다.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를 뒤적였다. “수십 년간 완전히 바보처럼 살았다. 후회할 게 너무 많아 다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 중 첫째는 아내들과 아이들에 관한 것이다. 난 나쁜 아빠였고 폭력적인 남편이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술과 약을 끊고 사는 것뿐이다. 솔직히 샤론이 없다면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예순은 고사하고 마흔까지도 못 살 거라 생각했다”는 그는 일흔을 바라보고 있다. 극심한 약물중독에도, 자동차사고에도, 술에 취해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자고 난 뒤에도, 호텔 방이 1층인 줄 알고 3층에서 뛰어내린 일을 겪고도 말짱히 무대 위를 누비고 있다. 몸을 ‘남용’한 후유증으로 오즈번은 매일 약을 복용해야 버틸 수 있는 파킨슨 증후군을 앓고 있다. TV 리얼리티 쇼 ‘오즈번 패밀리’를 통해 알려진 청력 감퇴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하지만 무대에 오르면 여전히 무적의 로커다. 그는 “내 인생에 많은 목표가 남아 있진 않지만 내게 열정이 있고 관객이 있는 한 언제나 로커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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