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이 요시키 일본 이화학연구소 발생재생과학연구센터 부소장 사건을 계기로 일본인의 자살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유명인중에는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가 1948년 애인 야마자키 도미에와 도쿄의 다마가와조스이 하천에서 뛰어내려 동반 자살한 사건이 유명하다. 이를 계기로 젊은이들의 동반자살이 늘어나는 이른바 베르테르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극우인사들이 자신의 주장을 대외에 펼치기 위한 극단적인 수단으로 자살을 택한 사례도 많다. 이를 통해 우익세력의 결집을 도모하겠다는 의도이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노기 마레스케 육군 대장은 1912년 메이지 일왕이 사망하자, 장례식날 아내와 함께 할복 자살했다.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 11월 자위대 대원들에게 “전력보유와 교전권을 금지한 평화헌법을 폐기하라”고 촉구하며 할복했다.
우익인사 노무라 슈스케는 1993년 주간아사히가 우익정당의 설립을 풍자한 만화를 실은 것에 반발, 아사히신문을 방문 항의하던 도중 권총으로 자살했다. 노무라의 자살은 언론을 상대로 한 폭행으로 평가절하됐으나, 아베 신조 총리와 친분이 두터운 우익성향의 하세가와 미치코 사이타마대 명예교수는 최근 노무라의 죽음을 예찬하는 글을 기고, 세간을 놀라게 했다.
스포츠 및 연예계 스타가 재기에 실패한 것을 비관, 자살하는 것은 흔한 사례다. 일본 프로야구 한신타이거스를 거쳐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106승을 기록한 투수 이라부 히데키는 2011년 7월 로스앤젤레스 근교 자택에서 자살했다. 2009년 현역 복귀를 노리던 이라부는 미국과 일본 독립리그에서 활약했으나 재기에 실패, 2010년 다시 은퇴를 표명했다. 1970년대 활약한 가수 후지 게이코는 지난 해 8월 자택에서 투신 자살, 일본 열도를 놀라게 했다.
사사이 부소장의 사례는 죄보다 수치심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일본의 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공동저자로 참여한 STAP세포 논문이 날조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배아줄기세포 최고 권위자로서의 명예가 실추되자 죽음을 택했다는 것이다.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인들은 자살을 통해 치욕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고 했다”고 언급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논리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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