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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달러 곳간

입력
2014.08.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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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안정을 이룩하고, 흑자기조를 정착시켰으며, 1인당 국민총생산(GNP)을 3,000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1987년 12월 청와대에서 전두환 대통령 주재로 열린 5공 경제치적 평가회의에서 나온 자화자찬이다. 과장만은 아니었다. 1960년대 경제개발 이후 줄곧 적자에 시달리던 경상수지가 처음 흑자로 돌아선 건 1986년이었다. 당시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흐름에 힘입어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리면서 그 해 46억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냈고, 1988년까지 누적 흑자가 286억 달러에 달했다.

▦ 그로부터 10년 뒤인 1997년 12월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 당선자는 “곳간이 비었다”고 말했다. 반도체 한 품목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상황에서 반도체 호황국면이 꺾이자 1996년 사상 최대의 적자(237억달러)가 발생했고, 이듬해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려야 했다. 당시 외환보유액은 300억달러였지만 당장 꺼내 쓸 수 있는 돈은 겨우 20억달러였다. 이런 악몽 때문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정점에 달한 2008년 3분기에 4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내자, 다시 외화유동성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외환보유액이 2,000억달러가 넘었지만 국제사회의 불신의 벽은 높았다.

▦ 한국은행은 5일 외환보유액이 지난달 말 기준 3,680억달러(약 380조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달러 곳간을 채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역을 통해 해외에서 달러를 벌어오는 것인데, 경상수지가 28개월 연속 흑자행진을 하고 있고, 보유 외화의 자산운용수익도 늘어난 덕분이다. 규모로는 세계 7번째다. 외환보유액은 많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적정 규모를 넘어설 경우 인플레이션과 자산버블의 위험이 있고, 부족하면 디폴트 우려가 불거진다.

▦ 외환보유액 적정 규모에 대한 논란이 제기된다. IMF가 상반기 “한국의 외환보유액 유지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0.6%인 연간 약 7조3,000억원에 달한다”며 과도하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 단초다. 사실 여러 기준이 있지만 외환보유액 적정수준 산정은 쉽지 않다. 얼마나 많은 외국자금이 국내에 들어왔다가 위기 때 일시에 빠져나가느냐에 관건이다. 미국 금리인상이 내년 중 시작되면 어떤 충격이 닥칠 지 알 수 없는 만큼 당분간 곳간을 튼실히 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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