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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을 고른 까닭

입력
2014.08.0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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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ㆍ곡성이 새누리당 후보인 이정현을 택한 것은 강고한 지역주의에 균열을 일으킨 획기적 사건이었다. 지금껏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고 앞으로도 해줄 능력이 없는 제1야당과의 의리 따위, 호남은 지키지 않았다. 정권 실세가 약속하는 이익 앞에 유권자는 냉정했다. 신상순선임기자 ssshin@hk.co.kr
전남 순천ㆍ곡성이 새누리당 후보인 이정현을 택한 것은 강고한 지역주의에 균열을 일으킨 획기적 사건이었다. 지금껏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고 앞으로도 해줄 능력이 없는 제1야당과의 의리 따위, 호남은 지키지 않았다. 정권 실세가 약속하는 이익 앞에 유권자는 냉정했다. 신상순선임기자 ssshin@hk.co.kr

민심은 밥에 있다. 호구(糊口)가 정의다. 결국 승부를 가른 건 경제였을 거란 분석이 있다. 부도덕보다 무능이 더 큰 죄다. 호남은 참아왔다. 이젠 훔쳐온 밥이라도 먹고 살아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쏠린 선거결과가 나오면 이긴 쪽의 모든 전력은 용인되고, 진 쪽은 모든 전력은 폐기해야 할 쓰레기더미로 치부되곤 한다. 7ㆍ30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하면서 고위공직자 인선 실패와 국정 공백,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과정에서 나타난 무능과 문책론 등 최근까지 정부 여당을 향했던 화살들은 우수수 떨어졌다.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일부 여당의원들의 잇단 모욕에도 ‘유권자들이 괜찮다잖아’하는 허무주의가 감돈다. 이제 비판의 공간은 야당의 정부 여당 발목잡기, 공천실패, 비전부재 등이 주로 채우고 있다. (…) 무엇보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여당 발목잡기’라는 이유로 민폐로만 치부되는 현상이 강화될까 걱정된다. (…) 주요 정책이 충돌할 때, 야당에 “여당 발목 잡지 말라”는 것이 사회적 약자들의 손을 놓으라는 주문과 어느 지점이 같고 어느 지점이 다른지 어떤 현명한 자가 명확히 알려줄 수 있을까. (…)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전남 순천 곡성에서 당선된 것은 한국 사회 전체가 잔치를 열만한 일이지만, 승리의 주요 이유인‘예산 폭탄’약속은 그 위험성과 폐해가 지나치게 축소 해석되는 듯 하다. 해마다 비판 받아온 유력 정치인들의 ‘쪽지 예산’끼워 넣기와 무엇이 다를까. 주로 도로와 철도 건설 등 선심성 개발을 목표로 하는 ‘쪽지예산’은 국가살림을 왜곡한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그것이 정권실세가 지역주의를 타파한 영광의 땅에 적용한다면 환영해야 할 일인가. (…)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야권을 비판하는 것을 너머, ‘승자 독식’이 덮어버리는 것 또한 비판해야 한다. 그것은 버릴 것과 지킬 것의 차이를 구별하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할 것이다.”

-선거가 덮어 버리는 것(한국일보 ‘36.5°’ㆍ이진희 사회부 기자) ☞ 전문 보기

“올바름보다 이익이 우선시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게 현실정치다. 주나라의 봉건제도가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제후들이 각축을 벌이던 춘추시대에 제나라 환공은 백성들의 경제적 욕망을 충족시켜줌으로써 가장 먼저 패권국가에 올랐다. (…) 현대정치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올바른 정치보다는 이익을 앞세우는 정치가 현실에서 득세해온 게 우리 현대정치사다. 위정자들도 사회 정의보다는 국리민복이란 말을 자연스레 입에 달고 산다. (…) 인간의 본성 자체가 옳고 그름보다는 자신에게 얼마나 이로운지 아닌지를 먼저 따지기 때문일 터이다. 그래서 우리 정당, 특히 보수정당은 올바름보다는 국민의 이익과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정책을 마련하는 데 더 관심을 쏟는다. (…) 7ㆍ30 재보선에서 참패한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비판이 한창이다. (…) 하지만 정작 필자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이번 선거로 우리나라의 정치와 사회, 그리고 국민들의 삶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냐이다. (…) 이번 선거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유권자들이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외면한 채 누가, 그리고 어떤 정당이 내 삶에 유리한가를 따져 치른 선거였다. 똑같이 무능한데도 여당보다 오히려 야당을 심판한 것은 국민들의 판단 기준이 옳고 그름보다는 이익에 더 기울었다는 방증이다. 옳지 않음을 심판한 게 아니라 이롭지 못함을 심판한 셈이다. 이런 흐름은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2007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 사건을 깔아뭉개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는 유가족을 노숙자라 부르고, 군대 간 자식이 맞아 죽어가는, 그런 정권이다. 우리는 이번 선거를 통해 그런 정권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줌으로써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면죄부를 주고,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게 과연 합리적인 국민의 선택인가. 무능하고 비전 없는 야당, 당연히 심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올바름엔 눈감고 눈앞의 이익만을 좇게 되면 우리한테 어떤 미래가 펼쳐질 것인지도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이로움과 올바름을 함께 고려하는 혜안이 아쉽다.”

-이로움과 올바름(한겨레 기명 칼럼ㆍ정석구 편집인) ☞ 전문 보기

보혁 구분 없이 기자들은 손학규를 좋아했다. 정치인답지 않아서였다. 저녁이 있는 삶처럼 시적인 구호는 없었다. 죽을 줄 알면서 독배를 들었다. 의연했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손학규는 고별사에서 “손학규가 정치를 그만두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겠습니까마는…”이라고 했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비전이 허무하게 끝나는 게 왜 대단치 않은 일인가. ‘떳떳하게 일하고 당당하게 누리는 세상’. ‘저녁이 있는 삶’의 요체다. 지금의 야당 체질이라면 그들은 ‘저녁이 있는 삶’이란 구호를 방전된 배터리 버리듯 할 것이다. (…) 손학규는 한나라당에선 배신자라고 욕먹고, 떠나는 순간까지 변함없는 애정을 고백한 ‘민주당’에선 ‘정체성’에 맞네 아니네 하는 소리를 어지간히 들었다. 이런 지독한 편견 속에서도 그만큼 젠틀하면서 똥배짱도 있던 사람, 쇼를 하더라도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람, 비틀거리면서도 스케일이 다른 비전을 전진시켜 온 사람, 찾기 쉽지 않다. 이제 야당의 중원이 텅 비었다. 중도세력이 얼마나 긴 겨울잠에 들지 걱정이다. (…) 정치뿐 아니라 모든 일이 꼭 끝을 봐야만 끝은 아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룰 목표가 없어서 떠나는 자와 일생의 목표를 앞에 두고 ‘내 역할은 이제 여기까지’라고 여정을 중단하는 사람을 보는 마음은 다르다. 손학규는 회견에서 “능력도 안 되면서 짊어지고 가려 했던 모든 짐들을 이제 내려놓는다”고 했다. 정말 능력이 모자라서일까. 사람 갖고 장난치다 생긴 공천 참사와 새정치연합 선거판 퇴출의 책임을 손학규가 지고 떠난다. 정치권 ‘자산’이 난세에 ‘유산’이 됐다. ‘저녁이 있는 삶’이 가장 필요한 ‘서민보수’의 선택을 받지 못한 건 아이러니다.”

-손학규와 천국주(중앙일보 ‘강민석의 시시각각’ㆍ정치부 부장대우) ☞ 전문 보기

“7ㆍ30 재보선이 야당의 참패로 끝난 1일 아침,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최고위원회에서 사퇴를 선언했다. 곧 이를 알리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안 대표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김한길 대표만 마이크 앞에 앉았다. 그마저도 본론만 간단히 밝힌 뒤 쏜살같이 회견장을 떠났다. 두 사람이 물러난 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손학규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계은퇴 선언이었다. 측근들은 눈물바람이었으나 그는 의연했다. 다만, ‘저녁이 있는 삶’을 실현하지 못해 송구스럽다고 할 때는 정말 안타까운 기색이었다. 회견문을 읽고 몇가지 질문을 받은 뒤 기자실을 돌며 작별인사를 했다. 악수를 나누는데, 갑자기 5년 전 일을 꺼냈다. “그때 춘천에서 헛걸음하게 만든 거 정말 미안합니다.” 정작 난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는 마음에 담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따로 전화 통화를 했다. 승리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경기도의 대구’라는 팔달에 출마한 줄 알았는데 뜻밖이었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손학규의 시대가 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질 거 같았다. 그러나 질 때 지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손학규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 평생 선거운동을 이번처럼 열심히 한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서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빛나던 자신의 시절이 저물어간다는 걸 감지하지 못한 채 정돈되지 않은 삶을 계속한다. 특히 정치인들은 장강의 뒷물결에 밀려날 때에도 ‘나만은 정치를 계속해야 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 손학규는 ‘손학규의 시대’에 ‘저녁이 있는 삶’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누군가 그 꿈을 꼭 이어받으면 좋겠다. “여전히 별은 빛나고 태양은 뜨겁다”는 건축가 서현의 말처럼,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우리 사회의 절망은 여전하고, 삶의 질에 대한 갈망과 연대의 희망은 여전하기에.”

-그 사람 손학규(8월 4일자 ‘한겨레 프리즘’ㆍ이유주현 정치부 기자) ☞ 전문 보기

* ‘칼럼으로 한국 읽기’ 전편(全篇)은 한국일보닷컴 ‘이슈/기획’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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