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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의 길 위의 이야기] 운동화 끈

입력
2014.08.05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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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발에 눈길이 꽂힌 건 언제부터였을까. 더러운 운동화였다. 한쪽 끈이 풀려 있었고 그 끄트머리는 시커멓고 눅눅하게 짓이겨져 있었다. 몇 날 며칠씩 밟히는 대로 밟고 끌리는 대로 끌고 다닌 듯했다. 나는 전동차 의자에 앉아 시선을 아래쪽에 두고 있었다. 복닥이며 갈마드는 발들은 화사하고 유쾌했다. 은색 발톱이 뒤로 물러나면 파란 발톱이 나타났다. 웨지힐이 빠지면 무좀양말을 꿴 스포츠샌들이 그 자리를 메웠다. 여름 전동차의 이런 풍경은 늘 ‘발 박람회’ 같은 인상을 풍기는데, 그 운동화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 없었던 것도 색색의 페디큐어와 갖가지 시원한 신발들 사이에 뭉툭 끼어 있었기 때문이리라. 운동화가 출입구 쪽으로 옮겨간 건 환승역을 앞두고서였다. 마침 나도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야 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단을 오르고 환승통로를 지나가는 동안 본의 아니게 나는 그의 뒤를 밟았다. 신발만 뺀다면 반듯한 행색이었다. 치렁치렁 끌리는 끈이 밟혀 그는 두어 번 비틀거렸다. 그런 후에는 나름 조심하려는 듯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한쪽 발로 반원을 크게 그렸다. 덕택에 그는 느렸고, 가벼운 절름발이처럼 보였다. 나는 속이 탔다. 제발 좀 묶어! 왜 안 묶는 거야! 앞을 가로막고 이유를 묻고 싶었다. 아니면 나라도 대신 꽉 졸라매주고 싶었다. 플랫폼으로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뛰면 탈 수 있는 거리였는데, 괜히 나는 저 운동화 끈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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