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0 보궐선거에서 야당이 참패한 가장 큰 원인으로는 지도부의 무능이 꼽힌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 여당이 보여준 무능과 부도덕을 돌아보면 여기에 이의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를 테면 선거 전 SNS 등을 타고 조직적으로 유포된 세월호 특별법 반대 괴문건을 보자. 요지는 이렇다. 세월호 사망자들은 보험금과 국민성금, 기부금, 의사자 지정 보상금 등으로 국가 유공자가 받는 것보다 훨씬 많은 보상금을 받게 된다. 여기에다 입시전형, 의료급여, 취업보호 등 특혜까지 주어진다. 수학여행을 가다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에게 국가 유공자보다 더 나은 대우를 해주는 것이 과연 온당한가.
물론 반박하는 문건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선정성과 조직성, 그리고 파괴력에서 괴문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결국 문건을 유포한 이의 의도에 따라 유권자는 선거 전략도 없이 세월호만 바라보던 야당과 분리됐다. 그리고 이것이 선거 무관심을 부르고 여당 승리에도 기여한 것이다.
흔히 민주 사회에서 시민권의 확대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하나는 사회 보장성 물질적 복지의 확대, 또 하나는 절차와 과정에서 참여의 확대다. 시민의 권리가 물질적 복지에 중점을 둘 경우 복지비와 사회보장 프로그램 등을 확대하는 것으로 표출된다. 이 점에서 권위주의 정부와 민주화 정부는 오십 보, 백 보다. 실제로 박정희, 전두환 정부의 사회보장 프로그램은 민주화 이후 정부의 그것보다 효율적인 면도 많았다.
하지만 물질적 복지보다 중요한 것은 참여의 확대다. 시민들이 자신의 문제를 다루는 정치나 정책 결정과정에 참여하는 폭을 확대하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이 특별법 제정에 앞장 선 것이 지닌 의미도 피해 당사자, 또는 사회적 약자가 직접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제도와 규범 만들기에 나섰다는 점에 있다. 결과적으로 특별법에 반대하는 괴문건은 시민과 사회적 소외 계층의 참여 확대를 저지하는 역할도 해낸 것이다. 이 와중에 경제 살리기와 예산 폭탄 운운하는 이야기가 먹혀 든 것은 인간의 권리, 안전과 법치, 생명과 평화처럼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가치와 제도들이 돈보다 못한 가치로 전락한 것을 의미한다.
교수들이 인문학 위기라며 죽어가는 소리하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오히려 인문학 열풍으로 뜨겁다. 각급 도서관과 지자체뿐 아니라, 백화점 문화센터, 사회 복지관, 노인복지관에서도 인문학 강좌가 다투어 열린다. 대학이나 언론사도 질세라 시민 인문학 강좌 개설에 나서고 여유 있는 이들은 수백만원짜리 CEO 인문학 강좌를 찾는다. 연예인이나 등장하던 TV프로에 인문학자가 등장하고, 그가 내는 책은 하나같이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도 넘쳐난다.
사정이 이쯤 되니 가난한 인문학 단체인 공동체에도 여러 제안이 들어온다. 주로 대규모 회원 조직이 있는 기업이나 케이블 TV 등에서 오는 제안의 요지는 비슷하다. 인문학 사업으로 돈 좀 벌어보자는 것이다. 인기 강좌를 만들어 사람들을 모으고 동영상을 만들어 판매하거나 TV로 방영하자는 것이다.
이걸 외면하는 것은 돈에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를 제안하는 측과 우리의 지향이 다른 것도 문제지만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인문학으로 돈과 인기를 따르다 보면 필연적으로 본말이 전도될 가능성 때문이다. 이런 사이비 인문학이 갈 길은 뻔하다. 거품 뒤에 찾아오는 것은 진짜 위기다.
그 위기가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열풍의 진원이어야 할 대학 인문계 학과가 열풍에서 소외된 채 통폐합이 가속화하고 있는 것만 해도 그렇다. 생계를 위해 이 대학, 저 도서관의 강의를 전전하는 젊은 인문학자의 막막함도 여전하다. 인기 저자의 책 몇 권을 제외한, 인문학 도서의 판매도 악화일로다. 유사 인문학 열풍에 밀리면서 진짜 인문학이 죽어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인문학 위기의 가장 뚜렷한 증거는 이번 선거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대학교수 사회에서 위기란 말이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이들이 여러 위원회나 강의에 불려 다니며 먹고 살만해지기도 한 모양이다.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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