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지역에 큰 침수 피해를 입힌 태풍 나크라가 북상하면서 주말을 고비로 그 세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그러나 재계는 이번 주 중반 발표될 정부의 2015년도 세법 개정안 발표를 앞두고 잔뜩 움츠린 채 태풍전야 같은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바로 사내 유보금에 과세하는 기업소득 환류 세제 도입 방안이 세법 개정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재계는 사내 유보금에 대한 과세 방침이 현실화할 경우 기업별로 늘어 날 세금폭탄의 규모와 충격이 얼마나 될지 분주히 주판 알을 튕기면서도 “이중과세일뿐더러 임금과 투자 증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극력 피력해왔다. 하지만 주말을 고비로 그 ‘저항의 몸짓’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재계는 사내 유보금 과세의 기본취지가 경기 및 투자 활성화에 있다는 데 공감하고 수용의 입장으로 한 발 물러섰다. 다만 경제 흐름이나 기업 사정에 맞게 좀 더 유연하고 촘촘한 입안과 시행을 요구하는 유화적인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돈 냄새가 날 만한 사업의 기회만 있다면 주변에서 말려도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에 나서는 게 기업의 생리다. 최경환 경제 부총리가 누차 강조했듯 “경제는 심리적 요소가 중요하다”는 말은 백 번 옳다.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살아야 실물이 살아나는 것은 경제의 커다란 흐름이다. 그러나 그 전제 조건은 실물이 좋아진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 다는 점이다. 그런 근거 없이 심리가 좋아 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앞 뒤가 맞지 않는다.
기업들도 마찬가지이다. 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선뜻 투자에 나서기 어려운 것은 바로 경기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와 기업 내부 사정에 따라 기회를 잡지 못하는 복합적인 이유 때문이다. 투자라는 것은 단순히 의지에 따른 것은 아니다. 기회와 타이밍, 사업 시너지 등 3박자가 조화를 이뤄 정밀하고 촘촘한 객관적인 판단과 이에 적합한 파이낸셜 엔지니어링이 조합할 때 비로소 이뤄지는 중대한 경영의 결단이다.
물론 정부로서도 할 말은 많다. 이명박 정부 당시 기업 투자와 고용을 높이기 위해 법인세 최고 세율을 25%에서 22%로 낮췄는데 결과적으로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은 늘지 않았다. 이번 정부 들어 상황은 크게 변한 것이 없다. 기업이 투자는 안 하고, 유보금만 쌓아두니 그만큼 내수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보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투자 배당 임금 인상을 하지 않은 기업에 대해 당시 법인세를 낮춰준 만큼 이를 걷겠다는 논리는 그 명분과 방향성에서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벌금을 물리듯 과세 채찍을 휘둘러 기업들의 투자를 옥죄는 것은 가뜩이나 신 성장동력 창출에 고민하는 기업들의 자율적 창의성에 보탬이 되기 보단 또 하나의 규제를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기업들은 국내외 경제환경과 정부정책들을 종합해 투자를 결정한다. 투자결정은 미래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결단으로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록 경기회복은 더뎌진다. 지금 기업들에게 필요한 것은 투자에 유리한 규제완화와 세제지원이다. 정부는 규제를 없애는 역할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기업이 쌓아둔 사내 유보금을 투자로 유도하기 위해 일몰제에 걸려 이미 만료된 투자세액공제 정책 부활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 이는 규제완화와 맥락을 같이해 정책간 상충이라고 볼 수 없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은 마라톤 회의를 이끌면서 그 의지를 보였다. 그래도 과세가 필요하다면 세계 경기회복 추세에 맞춰 한시적으로 일몰제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과세에 대한 존속기간과 재검토 기한을 정해 일정 기간 후 자동 폐지되는 일몰제를 적용하는 것이다. 세계 경기회복이 가시화하면서 투자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기업이 자생적 판단으로 유보금을 운영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경제는 심리다. 정부가 기업의 재무구조와 투자행태에 개입해 강제적 조항을 만들면 기업은 움츠리고 효율성과 자율적 참여도 줄어든다. 경기활성화를 위한 내수 확대도 중요하지만 경제주체인 기업이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심리를 최대한 살려줘야 한다. 과세 방식에 보다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장학만 산업부 선임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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