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납품 대가로 리베이트를 주고 받은 제약사와 의사들이 또 무더기로 적발됐다.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수사단은 전국 379개 병ㆍ의원 의사, 약사에게 총 15억6,000만원 상당을 건넨 혐의로 차병원 계열 CMG제약과 임직원 5명, 뒷돈을 받은 혐의로 의ㆍ약사 40명을 기소하고, 수수 금액이 적은 의ㆍ약사 182명에 대해 보건복지부에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재판에 넘겨진 의사 1명은 CMG 약품 처방 대가로 14차례에 걸쳐 7,500만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뒷돈을 준 제약사는 물론 받은 의사까지 처벌하는 ‘쌍벌제’가 2010년 도입됐지만 불법관행 근절에 실효성이 없음이 다시 확인된 것이다. 특히 CMG는 쌍벌제 시행 이후 경쟁사들이 주춤하는 사이 영업사원들에게 판촉비를 수금액의 최고 41%까지 지원하는 등 리베이트 영업을 더 강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 리베이트는 의약품 시장의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결국 약값에 반영돼 의료소비자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건강보험 재정을 갉아먹는 등 폐해가 심각하다. 정부가 의약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쌍벌제 도입 등 처벌을 강화하고 합동수사단을 꾸려 대대적인 수사에 나선 이유다.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은 제약업계와 의료계도 수 차례 떠밀리듯 자정 선언을 했다. 하지만 약효를 높이기 위한 R&D 투자를 외면한 채 손쉽게 돈을 벌려는 제약사와 오랜 뒷돈 관행에 젖어 범죄란 인식조차 잊은 의료인들의 검은 거래를 뿌리 뽑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리베이트 제공에 법인카드를 이용하거나 강연, 문화체험 등의 명목을 내세워 뒷돈을 건네는 등 수법이 갈수록 치밀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부터 ‘리베이트 투아웃제’가 시행돼 주목을 끌고 있다. 리베이트를 제공한 약품에 대해 금액에 따라 1개월에서 1년까지 건강보험 급여를 정지하고 두 차례 적발되면 보험급여에서 퇴출한다는 것이다. 주력 약품이 퇴출될 경우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는 강력한 조치다. 한국제약협회가 지난달 23일 ‘윤리헌장’을 선포하고, 구체적인 방안을 담은 ‘윤리실천강령’을 제정키로 한 데서도 전에 없는 위기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쌍벌제 도입 때처럼 반짝 효과를 넘어 실효를 거둘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일각에선 제약사가 영업전문 대행업체를 통해 책임을 회피하는 등의 편법이 등장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제약업계는 당장의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말로만 윤리경영을 외칠 것이 아니라 기업경영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로 삼기 바란다. 뒷돈 관행의 한 축이었던 의료계의 각성도 필요하다. 정부도 리베이트 관련 관리감독과 사후 대처를 철저히 하는 한편, 이번 기회에 의약업계에 공정경쟁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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