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이런 날씨엔 입기에도 보기에도 민소매만한 게 없다. 소매가 약간 있는 것과 아예 없는 것이 어찌나 차이가 나는지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민소매에는 늘 한 가지 문제가 따르는데, 바로 겨드랑이다. 여자연예인들의 ‘겨털 굴욕’ 사진도 민망하지만 나로서는 매끈하게 제모한 겨드랑이도 어쩐지 좀 부끄럽다. 이래저래 버스 손잡이를 잡는 게 난감하다. 남자들의 겨드랑이에 대해서는 관대한데 여자들에 대해서는 왜 그렇지 않은지 의아하기도 하다. 다른 부분의 ‘헤어’라면 남녀에 따른 관례가 이만큼 극명하지는 않다. 머리칼은 남자도 여자도 다듬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눈썹도 마찬가지다. 수염은 주로 남자 얼굴에 자라니 신체 특징에 맞게 관리한다는 편이 맞겠고, 은밀한 부위는 알아서들 가리니 패스. 그런데 ‘겨털’을 보는 시선이 유독 여자에게 까탈스러워진 이유는 뭘까. 헐렁한 유니폼을 입은 남자농구 선수들의 슛 포즈엔 무심할 수 있으면서 말이다. 몇 년 전 ‘러브픽션’이라는 로맨틱 코미디를 본 적이 있다. 이 영화에는 ‘겨털’을 무려 소중히 여기는 여주인공이 남자친구와 실랑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낄낄거리는 한편으로 남들 눈을 신경 쓰지 않는 그녀의 대담함이 부럽기도 했다. 따라해 볼 엄두가 나지는 않았지만. 하긴 미의식이야 변하기 마련이니 언젠가는 제모 대신 ‘겨털’을 예쁘고 가지런하게 다듬어 서로 자랑하는 시대가 올지 누가 알겠는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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