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형제의 비극을 소재로 한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작품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고음의 아리아도, 앙상블과 함께하는 ‘칼군무’도 없다. 165분간 잔잔한 스토리가 이어지는 이 작품은, 그래서 뮤지컬이라기보다 연극에 가까운 인상을 준다.
화려한 뮤지컬이 대세인 국내 시장에서 철저하게 외면 받을 것 같았던 이 뮤지컬이 예상을 깨고 기분 좋은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 대학로 홍익대 아트센터에서 만난 배우 진아라(51ㆍ존스턴 부인 역)에게 비결을 물었다. “원래 넘버(노래)보다 드라마가 강한 뮤지컬이에요. 연극 요소를 좋아하는 관객에겐 최고의 작품인 셈이죠.”
진아라는 화려한 넘버가 없다는 점을 아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넘버가 많았다면 큰일날 뻔 했다”고 했다. 그는 “여태껏 화려한 뮤지컬을 주로 해오면서 음정에 대한 강박이 있었는데, 이번 작품은 노래 중에도 눈물, 콧물을 쏟아내느라 음정만 따지고 있을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노래의 기교보다 연기의 진정성을 살리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그는 “슬픔을 절제하지 않는 한국인의 정서를 가감 없이 보여준 점이 관객을 극장으로 부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블러드 브라더스’의 배경은 1960년대 경제 공황기의 영국 리버풀이다. 존스턴 부인은 가난 탓에 쌍둥이 형제 중 한 명을 부잣집에 입양 보내지만, 몇 년 후 이 사실을 모르는 쌍둥이는 의형제를 맺으며 운명처럼 서로에게 끌린다. 그러나 극의 말미에 태생적인 가난과 인간적인 욕망에 휘둘린 쌍둥이는 결국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극의 시간적 배경이 20년의 세월을 넘나들지만 아역배우를 쓰지 않고 송창의, 조정석, 장승조, 오종혁 등이 일곱 살 꼬마부터 성인 캐릭터까지 연기한 점도 ‘블러드 브라더스’의 특징이다. 진아라 역시 1막에서 스물다섯 살 여인을 연기했다. 50줄에 접어든 배우에게는 쉽지 않은 역할. 그는 “외모에서 오는 이질감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정서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며 “숙련된 배우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극의 흐름을 잡아간다는 점이 ‘블러드 브라더스’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진아라에게 ‘블러드 브라더스’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는 1986년 데뷔 이후 꾸준히 활동을 해왔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는 대표작이 없을 정도로 배역 운이 없는 배우다. 이번 작품이 그간의 불운을 씻어낼 수 있을지 묻자 그는 “좋은 작품 안에서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는 말로 대답을 갈음했다. 그러면서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24년간 공연된 이 작품이 한국에서도 그만큼 재연되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며 “공연 때마다 존스턴 부인 역은 무조건 내가 맡게 해달라고 제작사에 빌 생각”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일흔이 넘어서도 존스턴 부인이 되겠다는 그의 열정만으로도 이미 ‘블러드 브라더스’는 그의 대표작이 된 듯 하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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