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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연의 사이아트] 표절의 미학

입력
2014.08.03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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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은 창의성의 도둑질, 범죄 이상의 죄악

美학교선 폭력보다도 더 엄격히 다뤄져

창조경제 위해선 윤리의식부터 자리잡아야

현 미국 부통령은 조 바이던이다. 약 25년 전, 그는 45세 젊은 나이에 떠오르는 차기대권 주자였다. 그러던 그가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곧 이어 학력 부풀리기, 논문 표절 의혹이 뒤따랐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지 않은가? 바이던은 결국 대통령 후보직을 자진 사퇴했다.

발단은 어느 모임에서 한 연설이었다. “나는 우리 가문에서 나온 첫 대학 졸업자입니다. 그리고 청중석에 앉아있는 내 처는 그녀의 가문 통틀어 첫 번 대학 문턱을 밟은 여자입니다.” 감동적인 연설이었다. 문제는 몇 달 전 영국에서 당시 노동당 당수 닐 키녹이 비슷한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바이던은 그 후 당시를 회상하면서 말했다. “ ‘키녹이 말하길’이라는 두 단어만 덧붙였으면 역사가 바뀌었을텐데…”

바이던은 결국 오바마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이 되었으니, 대중으로부터 용서받기까지 꼭 20년이 걸린 셈이다. 바이던은 부통령 취임식에 닐 키녹을 초청해 그를 “내 연설문 작성자입니다”라고 소개하는 유머감각도 발휘했다고 한다. 이건 표절에 얽힌 극히 드문 해피엔딩 스토리다. 대부분은 비극으로 끝난다.

표절의 첫 사례는 로마 시대로 2,0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시인 한 분이 다른 시인이 자기 시의 일부를 베낀 걸 나무라는 내용을 시로 읊은 것이다. 당시에는 아마 표절을 의미하는 단어가 마땅치 않았던 모양이다. 표절이란 단어의 어원은 ‘남의 노예를 훔치거나 멀쩡한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행위’에서 유래한다.

표절은 정치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순수해야 할 예술과 정직해야 할 과학에서 더 활발하게 행해진다. 문학에서 표절의 거장은 단연 셰익스피어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해서 그의 유명한 희곡 가운데 상당수는 타인 작품과 아이디어를 적절히 버무려서 오리지널과는 격이 다른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들이다. 음악 분야 역시, 문학이 서러워할 정도로 표절이 자연스럽게 행해져 왔다. ‘사계’로 유명한 비발디는 자기 작품을 표절하고, 표절한 작품을 또 표절해서 수없이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그 곡 하나하나가 모두 주옥 같으니 어쩌랴. ‘신세계교향곡’을 작곡한 드보르작은 민속음악을 ‘참조’하였고, 요즘 랩 뮤직은 공개적으로 다른 곡들을 ‘샘플링’하여 새로운 곡을 만든다. 표절에 관한 한 미술 분야도 자유롭지 못하다. 르네상스 대가들 역시 다른 화가의 작품뿐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작품을 표절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라파엘의 ‘성모자상’과 비슷한 작품들이 세계 굴지의 미술관 여기저기에 걸려있는 걸 봐도 알 수 있다.

과학에서도 표절은 ‘과학’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이래 줄곧 행해졌다. 특히 “논문 발표를 하든지 아니면 도태되든지”라는 무시무시한 법칙이 지배하는 과학계 현 상황에서는 자의반타의반 표절이나 실험조작의 유혹을 떨쳐 버리기 힘들다. 이 유혹에서 벗어나기 얼마나 힘들며, 또 그 대가가 얼마나 큰지는 몇 년 전 황우석 교수의 사례가 잘 말해주고 있다.

표절은 범죄일까? 저작권 침해와 달리 표절 자체는 법적으론 범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물론 표절이 저작권 침해로 이어지면 그건 다른 이야기가 된다. 표절은 한 마디로 ‘윤리적인 도둑질’ 혹은 ‘지식 사기’ 정도로 보면 된다. 표절의 심각성은 법적인 것에 있지 않고 사회적, 윤리적인 것에 있다. 다시 말해 표절은 범죄가 아니라 죄악으로 간주된다. 일례로 미국 학교에서는 도용과 표절이 학교폭력보다 더 죄질이 나쁜 것으로 간주된다. 서구문명 자체가 ‘누가 먼저 했는가’를 가장 중시 여기는 가치관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왜 최근 들어 표절이 더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가? 갑자기 우리의 윤리 의식이 더 높아진 걸까? 그보다는 21세기가 창의성이 미덕인 시대이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개인의 가치관이자 사회의 인프라 자산이며, 국가의 경쟁력이다. 그러니까 창의성은 각 개인의 ‘윤리적 권리’이고, 표절은 ‘윤리적 권리의 침해’라고 볼 수 있다,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이를 실현하려면 먼저 사회전반에 걸쳐 윤리의식이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이번 글에는 유난히 따옴표가 많이 들어갔다. 따옴표를 뺀다면 내 글도 표절 시비에 휘말리기 때문이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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