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방송사에서 추락한 금융회사들의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포럼의 토론자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신뢰의 의미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굳게 믿고 의지함’이라고 되어 있다. 과연 금융소비자들이 금융회사와 금융시장을 굳게 믿고 의지하는지에 대해 묻는다면 모두가 한 목소리로 ‘아니다’라고 대답하는 요즈음이다.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를 시작으로 2000년대 초반의 카드대란을 거쳐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 정점을 찍으며 금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나날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저축은행사태나 동양그룹사태 그리고 금융회사들의 개인정보 대량유출, 부당대출 등 각종 금융사고는 안 일어나는 것이 이상할 만큼 자주 일어나고 있다. 다른 사람의 돈으로 돈을 번다는 금융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더불어 이런 잦은 금융사고가 신뢰를 잃게 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신뢰란 믿음을 쌓아 마음을 얻는 것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신뢰를 얻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바로 약속을 지키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면 된다. 금융회사가 금융시장이 소비자와 한 약속을 지키기만 하면,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만 하면 신뢰는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금융회사는 소비자에게 무엇을 약속하고, 또 소비자는 금융회사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금융회사를 이용하는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은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목돈을 굴리기 위해, 부족한 자금을 융통하기 위해, 또는 각종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금융회사의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한다. 이 과정에서 금융회사는 일정한 이자나 수익 또는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하고, 소비자는 금융회사로부터 약속한 이자나 수익 그리고 보험금을 받을 것을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소비자는 금융금사를 불신하게 되는 것이다.
약속은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때 지켜지는 것이다. 아무리 의지가 있어도 상황이 허락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고, 아무리 상황이 되어도 의지가 없다면 약속을 이행하기 어렵다. 우리는 흔히 약속을 지키는 일에 대해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빗대어 많이 한다. 혹시 금융회사들이 금융상품을 팔 때와 정산할 때의 마음이 다르지는 않는지, 아니면 마음은 있는데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상황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금융회사들은 정말 지킬 수 있는 약속만 고객들에게 하는지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약속을 지킬 수 있는 안전한 상품들만을 만들고 있는지 한번 뒤돌아 봤으면 한다.
세상에 위험이 없으면서 수익이 많이 나는 투자상품은 절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막상 투자상황에서 ‘수익률은 좋은데 위험은 별로 없어요’라는 투자 권유에 너무 쉽게 넘어간다. 지켜질 수 없는 약속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약속이 마치 지켜질 수 있는 것처럼 쉽게 생각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소비자 또한 지켜질 수 있는 약속과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을 구분할 수 있는 혜안, 즉 금융상품의 위험성과 목적을 알고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에 더해 금융업과 금융서비스에 대해 좀 더 이해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의 다양한 재무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용하는 금융상품과 서비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비용을 지불하는 데는 인색한 게 사실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금융서비스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에 대해서는 당연히 비용을 내야 한다. 금융기관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공짜여야 한다는 기대를 이제는 버리도록 하자.
금융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작은 노력으로 금융회사는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고 소비자는 지켜질 수 있는 약속만 받아들이기로 하자. 그러기 위해서 금융회사는 안전한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소비자는 너무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현자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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