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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스포츠 리더십' 인민을 마취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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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스포츠 리더십' 인민을 마취시키다

입력
2014.08.0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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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운 정국에도 체육경기 집착… 주민 체제불만 차단하는 수단으로

지난해 2월 28일 미국의 묘기 농구단 '할렘 글로브 트로터스'와 조선체육대학 횃불 농구팀의 친선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을 찾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전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데니스 로드먼과 포옹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지난해 2월 28일 미국의 묘기 농구단 '할렘 글로브 트로터스'와 조선체육대학 횃불 농구팀의 친선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평양 류경 정주영체육관을 찾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전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데니스 로드먼과 포옹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북한 선수단이 올림픽에 출전했다. 감독은 모두 몇 명 일까?’

정답은 1명이다. 북한에서 스포츠를 지도할 수 있는 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작전을 짜고,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고, 경기에 참가하는 전 과정이 김정은의 영도 아래 이뤄진다. 선수들은 승리의 영광을 김정은에게 돌리고, 김정은은 이들을 얼싸안으며 자애로운 리더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김정은은 지난 5월 평양에서 23층 아파트가 무너져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다음 날에도 축구경기를 관람했다. 환하게 웃는 김정은의 사진이 노동신문 1면에 실렸다. 당 고위간부들이 앞다퉈 주민 앞에서 고개 숙여 사과하고, 북한 매체들은 김정은이 뜬 눈으로 밤을 지새며 가슴 아파한다고 전했지만 스포츠에 대한 최고 지도자의 집착을 막지는 못했던 것이다.

스포츠에 대한 김정은의 애정은 병적일 정도다. 기행을 넘어 광기에 가깝다는 말도 나온다. 네 차례에 걸친 전 미국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의 방북이 대표적이다. 김정은은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고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 석방 문제로 미국과 첨예하게 맞붙은 상황에도 아랑곳 없이 ‘악동’ 로드먼을 불러 농구광임을 과시했다. 최근 김정은이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는 것은 농구하다 다쳤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북한이 유독 스포츠를 앞세우는 건 ‘김정은 체제’ 들어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북한은 2012년 11월 체육사업을 총괄하는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설립하더니 같은 해 12월에는 당의 핵심기구인 중앙위와 중앙군사위의 구호에 ‘축구강국, 체육강국’을 포함시켰다. 집권 2년 차인 지난해 들어 ‘체육열풍’을 더욱 강조하며 주민들의 시선을 돌리고 있다. 북한이 최근 9월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를 전격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경기를 관람하거나 스포츠 관련 시설을 찾는 횟수도 부쩍 잦아지는 추세다. 북한 매체에 공개된 대외활동을 기준으로 2012년 4건에 불과하던 김정은의 스포츠 시찰은 2013년 26건으로 6배 이상 늘었다. 특히 지난해 12월 고모부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은 주말마다 체육경기를 열고 스포츠를 집중 장려해왔다.

이 같은 스포츠 리더십은 김정은 체제의 대외 이미지를 높이는 효과가 있지만, 결국 불안한 리더십을 보완하면서 주민들의 불만을 돌리는 통치 전략이란 지적이다. 정부 관계자는 “스포츠는 돈을 적게 들여 주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분산시키고 사기와 자부심을 높일 수 있는 선전 수단”이라며 “경제성과가 미진해 갈수록 불만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스포츠는 김정은이 체제 유지를 위해 매달릴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스포츠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줄이는 마취주사인 셈이다.

흔히 독재수단의 우민화 수단으로 ‘3S’(스포츠ㆍ스크린ㆍ섹스)가 거론된다. 과거 무솔리니와 히틀러, 아르헨티나 군사정부도 스포츠를 체제 선전의 장으로 활용하며 통치 수단으로 악용했다. 특히 병진노선을 고집하며 핵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수록 이를 타개하기 위해 스포츠 열풍에 더욱 집착할 것으로 보인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냉전시기 동독이 서독과의 스포츠 경쟁에 주력했듯이 북한도 남한과의 현격한 경제격차에 따른 해결책을 스포츠에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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