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때론 화해의 장, 때론 정략적 수단 남북 스포츠 교류 어디까지 왔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때론 화해의 장, 때론 정략적 수단 남북 스포츠 교류 어디까지 왔나

입력
2014.08.01 20:00
0 0

화해 협력의 물꼬로 2000년 6·15선언 이후 민간차원 교류로 발전

정치적 악용 부작용 北, 고액의 대가 요구 등 정치·경제적 수단 활용

2000년 9월 15일 열린 제27회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서 정은순(오른쪽) 한국여자농구대표팀 선수와 박정철 북한 유도감독을 기수로 남북한 선수단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공동입장하고 있다. ●시드니=연합뉴스
2000년 9월 15일 열린 제27회 시드니올림픽 개막식에서 정은순(오른쪽) 한국여자농구대표팀 선수와 박정철 북한 유도감독을 기수로 남북한 선수단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공동입장하고 있다. ●시드니=연합뉴스

2007년 6월 4일 전남 강진군 축구전용경기장. 북한 4ㆍ25 유소년 축구선수단과 강진중학교 선수들이 친선경기를 위해 만났다.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유소년 대표팀이 남쪽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치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결과는 5대 1로 북한 유소년팀의 압승. 경기를 치른 선수들은 “승패를 떠나 진한 동포애를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스포츠 교류도 주춤

남북 유소년 축구 교류는 (사)남북체육교류협회 주도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간 남과 북을 오가며 정기적으로 이뤄졌다. 이 기간 남한 선수들은 평양을 6번, 북한 선수들은 전남 강진과 수원, 제주 등 국내를 4번 오갔다. 그러나 남북 간 긴장완화와 교류 증진의 촉매제로 평가 받은 정기교류전은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현재까지 남과 북 어디에서도 열리지 못하고 있다. 중국 하이난과 광저우 등 제 3국에서 경기가 치러져 근근이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으로 2010년 실시된 5ㆍ24 대북제재조치는 남북 스포츠 교류의 흐름을 더 악화시켰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역과 교류ㆍ협력사업이 전면 중단되면서 한동안 활발하게 이뤄지던 남북 스포츠 교류가 주춤해진 것이다.

화해 협력 분위기 기여하면서도 북한의 악용으로 변질

1990년대 물꼬를 튼 남북 간 스포츠 교류는 2000년 6ㆍ15선언을 전후로 민간 차원의 교류로 발전했다. 1991년 4월 일본 지바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구성된 남북 단일팀이 국제사회에 스포츠 분야에서 남북한이 하나가 됐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면 이후 민간 차원의 교류는 남북간 화해 협력 분위기를 지속하는데 기여했다.

1999년 8월 평양에서 열린 통일염원 남북노동자축구대회를 시작으로 1999년과 2003년 현대아산 주도로 열린 현대통일농구대회는 국민들에게 북한 스포츠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류경 정주영체육관 기공을 기념해 2003년 열린 통일농구대회에는 235m의 세계 최장신 리명훈 선수가 출전해 대회기간 내내 국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ㆍ폐회식 때 남북한이 한반도기를 앞세워 입장하면서 남북 체육교류의 꽃을 활짝 피웠다. 이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아오모리 동계 아시안게임 등 거의 모든 대회에서 남북한이 공동으로 입장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남북 스포츠 교류는 이처럼 남북 긴장 관계를 완화하는 긍정적 역할을 맡았으나, 북한이 이를 정치ㆍ경제적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짙게 보이면서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북한이 한국 민간단체들간 과당 경쟁을 이용해 고액의 대가를 요구하는 일이 빈번해진 것이다. 이렇다 보니 장기적인 교류 프로그램 대신 단기적이고 일회성 체육행사 위주로 진행되면서 스포츠 교류의 의미가 퇴색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남북관계 경색으로 이마저도 단절됐다.

국제경기 통한 교류 지향하지만 답보 상태

박근혜 정부는 과거와 같은 직접적인 교류는 과도한 대가가 따르기 때문에 국제경기대회를 통한 교류를 지향한다는 방침이다. 국제행사 일환으로 추진되는 체육경기는 비용부담도 국제관례나 대회 규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북한의 인천 아시안게임 참여를 두고 “대회 규정상 참가비용 부담은 각자가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거듭 밝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북한의 아시안게임 참가와 관련한 남북한 실무협상이 지난달 17일 결렬된 후 답보 상태에 빠졌다. 북한은 과거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처럼 제반 비용을 우리 측이 부담해주기를 바라고 있는데, 비용은 15~20 억원 정도 들 것으로 추산된다. 9월에 열리는 대회가 원활히 준비 되려면 북한이 늦어도 8월 15일까지 선수단 명단을 조직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북한이 실제로 참가할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북한 선수단 동선과 숙박 등 다양한 가능성에 대비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가 원칙을 내세운 소극적 접근으로 대립과 대결의 남북관계를 지속할 것인지 큰 틀의 전략적 접근으로 북한을 포용해 스포츠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나갈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남북 주요 스포츠교류 일지

▲1990년 10월 남북통일축구대회(서울ㆍ평양)

▲1991년 4월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일팀 구성(일본 지바)

▲1991년 6월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 단일팀 구성(포르투갈 리스본)

▲1999년 8월 통일염원 남북노동자축구대회(평양)

▲1999년 9ㆍ12월 현대통일농구대회(서울ㆍ평양)

▲2000년 6월 금강산 자동차질주경주대회(평창ㆍ금강산)

▲2000년 7월 삼성통일탁구대회(평양)

▲2000년 9월 시드니올림픽 공동입장

▲2002년 9월 남북통일축구대회(서울)

▲2002년 9~10월 남북 태권도 시범단 교환(서울ㆍ평양)

▲2002년 9월 부산아시안게임 공동입장

▲2003년 8월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공동입장

▲2003년 10월 정주영체육관 개관 기념 통일농구대회(평양)

▲2004년 8월 아테네올림픽 공동입장

▲2007년 6~7월 남북체육교류협회 유소년 축구단 교류(강진ㆍ평양 등)

▲2008년 6월 남북태권도 교류행사(평양)

▲2013년 7월 북한 여자 축구대표팀 동아시아 축구대회 참여(서울)

▲2013년 9월 남한 역도 대표팀 아시안컵 역도선수권대회 참여(평양)

▲2014년 9월 인천아시안게임 북한 참여 의사 밝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