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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는 자 '부자들 속으로' 쫓기는 자 '대중 속으로'

입력
2014.08.01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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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로 꼽히는 ‘1962년 페라리250 GTO’ 이 차의 가치는 약 500억원 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본햄스는 이달 중 이 차를 경매에 붙여 차의 실제 가치를 증명할 계획이다. ●월드카팬스 제공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로 꼽히는 ‘1962년 페라리250 GTO’ 이 차의 가치는 약 500억원 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본햄스는 이달 중 이 차를 경매에 붙여 차의 실제 가치를 증명할 계획이다. ●월드카팬스 제공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자동차는 뭘까. 완성차 업계가 내놓는 신차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벤츠 포르쉐 등 유럽 업체가 만드는 ‘럭셔리 카’가 그 주인공이다. 그러나 중고품까지 대상에 넣어 희소성까지 고려한다면 상황은 달라지는데, 세계 주요 경매업체인 본햄스(Bonhams)는 최근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1962년 페라리250 GTO’를 가장 비싼 차로 꼽았다.

그렇다면 이 차의 가격은 얼마일까. 경매 전문가들은 이 차의 가치를 약 5,000만달러(500억원) 가량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본햄스는 앞으로 1개월이 채 안돼 이 차의 실제 가치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본햄스가 이달 중 미국 캘리포니아주 카멜에서 경매에 붙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세계 3, 4위 업체인 본햄스가 이 자동차를 경매로 내놓은 걸 곁들여 화려함의 대명사로 알려진 세계 미술품ㆍ골동품 업계에 지각변동 바람이 불고 있는 사연을 소개했다. NYT에 따르면 전통의 1, 2위 업체인 소더비(Sotheby)와 크리스티(Christie’s)는 최근 급격히 떨어지는 수익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인터넷과 온라인을 통해 대중화에 주력하는 반면, 선두를 추격하는 본햄스와 필립스(Phillips) 등은 1, 2위 보다 더욱 규모가 크고 화려한 행사를 마련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우선 본햄스와 필립스. 두 업체는 올 들어 경매의 본고장인 영국 런던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크리스티 회장을 지낸 에드워드 돌만을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한 필립스는 런던 메이페어 버클리광장에 3만평방 피트(843평) 규모의 건물을 짓고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본부를 둔 머큐리그룹이 소유한 필립스를 위해 일하게 된 돌만 CEO는 “버클리 광장에 들어설 화려한 본부 건물이 화려한 성과를 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새로운 런던 본부는 환상적인 공간이 될 것이다. 고객들은 보다 많은 현대 작품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컨대 아름다운 본사 건물을 통해 부자 고객의 주의를 끌어 들인 뒤 회사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게 후발주자인 필립스의 전략인 셈이다.

번쩍이는 화려한 건물, 눈을 사로잡는 행사들에 집중하는 전략은 본햄스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올해 10월 런던 본드가에 6만평방 피트(1,700평) 건물에 입주하는 건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에서 고가 경매를 성공시키며 인지도를 높여 왔다.

18세기 프랑스 로코코 미술 대가인 쟝 오노르 프라고나르(Jean Honore Fragonard)의 풍경화를 경매에 붙여 1,710만파운드(290억원)에 낙찰되도록 했고, 러시아 화가 니콜라이 콘스탄티노비치 레리히(Nikolai Konstantinovich Roerich)의 ‘마돈나 라보리스의 기적’이라는 작품도 79만파운드(10억원)의 가치를 얻도록 했다. NYT는 최고가 페라리 모델을 10대나 보유한 한 소장자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차에 대한 경매를 이 회사에 맡긴 것 역시 희소성 있는 미술품ㆍ골동품이 제값 받도록 한 과거의 성공 사례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이미 고가 예술품 시장에서 확고한 위상을 구축했다고 자부하는 선두 업체는 다른 방향으로 시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소더비와 크리스티는 대형 전시장이나 화려한 이벤트로 ‘슈퍼리치’ 고객을 끌어들이는 대신 중저가 예술품과 골동품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에 골몰하고 있다. 중저가 예술품의 매매성공률은 50%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수 억원 가치의 고가품을 팔아온 오프라인 경매는 내놓을수록 손해다. 당연히 이 두 업체는 온라인을 새로운 거래통로로 활용하고 있는데, 구체적 대응은 확연히 다르다.

프랑스 사치품 제조업체인 프랑수아 피노가 지분 전량을 갖고 있는 크리스티스 전략은 독자생존이다. 외부 업체와 제휴하는 대신 크리스티스 특유의 고가 이미지가 투영된 별도의 온라인 채널을 구축해 보석이나 와인, 고급 핸드백 등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온라인 채널 활성화를 위해 거래 품목의 가격 하한선을 100파운드(17만원)까지 내려놨다.

크리스티는 온라인 채널에 대해 일단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2014년 상반기 온라인 채널을 통해 거래된 액수는 8,700만달러(870억원)로 전체 매출의 0.3%에 불과하지만, 이 기간 중 전체 신규고객의 3분의1 가량이 온라인 채널을 통해 창출됐다. 매출이나 수익성을 늘리는 데에는 아직 효과가 없지만, 고객 저변을 넓히는 측면에서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반면 소더비는 최대 라이벌 크리스티에 중저가 온라인 경매시장을 선점 당한 뒤 회사 대주주인 헤지펀드 매니저 다니엘 뢰브의 경영개선 압박이 거세지자 최근 궁여지책을 선택했다. 중저가 예술품 시장에서 손쉽게 많은 경매 참가자를 끌어 들일 수 있도록 세계최대 온라인 경매업체인 이베이와 손을 잡은 것이다.

소더비측은 이번 합작을 통해 약 1,000만명의 잠재 고객을 중저가 예술품 경매에 끌어들이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나 소더비가 2000년과 2003년 아마존과 이베이와 이미 비슷한 제휴를 맺은 사례가 있다는 걸 감안하면, 성공을 쉽게 확신할 수는 없다. 이 회사가 최근 규모가 알려지지 않은 내부 구조조정을 벌여, 상당수 직원을 연말까지 해고할 방침인 것도 이런 판단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관련 업계에서는 소더비가 이베이를 통해 내놓을 중저가 예술품 가격의 하한선을 5,000달러(500만원)로 정한 것에 대해 회의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미국 동부지역에서 유사한 사업을 벌이고 있는 스키너사의 케리 슈라이브 부사장은 “소더비가 제공할 (5,000달러 이상의 중저가) 물품을 소화할 시장이 이베이에 존재하는지 여부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스키너사는 전체 거래규모의 50% 가량을 온라인 경매로 처리하고 있는데, 실제로 낙찰가액 대부분 500달러~2,000달러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같은 듯 다른 전략에 대해 전문가들은 두 기업의 확연히 다른 기업문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런던에서 미술품 펀드를 운영하는 필립 호프만은 “크리스티는 기업가 정신이 지배하는 조직인 반면, 소더비는 여전히 전형적인 경매모델에 집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크리스티가 고객 저변을 확대하는데 주력하는 반면, 소더비는 단기적으로 매출이나 수익성에 치중하는 온라인 전략을 펴고 있다는 얘기다.

NYT는 세계 예술품 경매업계에 불고 있는 다양한 변화기류를 소개한 뒤, 온라인을 통해 일반 대중에게 중저가 미술품과 골동품을 마진을 남겨 파는 것이 험난한 사업이라는 점도 새삼 강조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지난달 16일 본햄스의 영국 옥스포드 지부에서 떡갈나무로 만든 18세기 옷장 경매가 이뤄졌는데, 수수료까지 포함한 최종 낙찰액은 200파운드(34만원)였다. 이는 이케아가 매장에서 판매하는 비슷한 모양의 조립식 옷장보다 10파운드는 싼 것이다.

중저가 예술품 경매에 참가하는 일반인에게 신품보다도 싼 골동품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지만, 수수료도 건지지 못하는 경매업체에게는 ‘몰락의 징조’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박경균 인턴기자(서울시립대 영문과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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