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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도 거짓말이 되는 의미과잉시대 꼬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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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도 거짓말이 되는 의미과잉시대 꼬집어

입력
2014.08.0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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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 지음ㆍ방미경 옮김

민음사 발행ㆍ152쪽ㆍ1만3,000원

밀란 쿤데라 14년 만의 장편소설

하찮고 의미 없는 것의 가치 설파

"쿤데라 스타일의 모든 것 보여 줘"

밀란 쿤데라의 새 소설 ‘무의미의 축제’는 농담이 거짓말로 받아들여지는 의미 과잉의 시대로부터 존재를 해방시킨다. 찬미하라, 무의미를. 민음사 제공
밀란 쿤데라의 새 소설 ‘무의미의 축제’는 농담이 거짓말로 받아들여지는 의미 과잉의 시대로부터 존재를 해방시킨다. 찬미하라, 무의미를. 민음사 제공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농담’의 작가 밀란 쿤데라(85)가 ‘향수’ 이후 14년 만에 새 장편소설을 냈다. 제목은 ‘무의미의 축제’. 작명법에서부터 ‘쿤데라 스타일’이 암시되는 150쪽 남짓의 짧은 소설이다.

아이러니라는 방법론을 통해 세계를 보는 체코 출신의 이 세계적 거장은 모호성의 신봉자로 50년 가까운 작가 이력의 대부분을 보냈다. 체코의 소설가로 시작해 프랑스어로 소설을 쓰는 프랑스 작가로 거듭나야 했던 반세기 동안, 그는 다양한 가치들의 대립항을 오가며 그 사이의 위계를 전복하고 해체함으로써 ‘복잡계’로서의 인간을 탐구해왔다.

새 소설 ‘무의미의 축제’는 쿤데라적인 것의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농담과 진실, 가벼움과 무거움, 순간과 영원, 기억과 망각, 빠름과 느림, 자아와 타자 등으로 변주돼온 그의 소설적 주제가 이번 작품에서는 의미와 무의미의 세계로 이어진다. 철학적 사변과 서사를 유동적으로 넘나드는 글쓰기, 역사의 삽화에서 한 시대의 징후를 읽어내는 독해력도 그대로다.

주인공은 알랭, 라몽, 샤를, 칼리방. 이들은 ‘신앙이 없는 작가의 사전에 단 하나 있는 성스런 단어, 우정’의 관계에 있는 친구 사이다. 라몽이 반갑지 않은 전 직장 동료 다르델로를 뤽상부르 공원에서 우연히 만나 칵테일 파티에 초대를 받고 친구들과 함께 파티에 참석하는 것이 주요 줄거리다. 다르델로는 최근 들어 나타난 이상한 신체 증상의 원인이 암일까 봐 가슴 졸이다가 의사로부터 암이 아니라는 진단을 듣고 기쁜 나머지 뤽상부르 공원을 산책하던 중이었으나, 라몽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자기도 모르게 “암에 걸렸다”는 거짓말을 하고 이상한 희열과 행복감을 느낀다.

파티 케이터링을 부업으로 하는 배우 샤를과 칼리방이 라몽의 소개로 다르델로의 칵테일파티를 준비하게 되고, 미남에 달변인 다르델로는 파티 내내 아름다운 여인에게 구애하는 데 골몰한다. 그러나 그의 탁월한 매력은 언제나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고 여인들은 카클리크라는 아주 평범하고, 전혀 흥미로지 않은 남자의 독차지가 된 역사가 있다. “뛰어나 봐야 아무 쓸데없을 뿐만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뛰어난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려고 할 때면 그 여자는 경쟁 관계에 들어갔다고 느껴 자기도 뛰어나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끼지만 “그냥 보잘것없다는 건 여자를 자유롭게, 조심하지 않아도 되게 해 주”는 것이다. 하찮은 것의 위대함이여!

쿤데라는 스탈린의 ‘스물네 마리 자고새’ 이야기를 통해 농담이 축자적 진실로 오독되던 시대를 지나 아예 거짓말로 여겨지는 시대의 서막을 들춘다. “사냥 중 총알이 모자라 멀리 떨어진 집에 가서 가져왔더니, 새들이 그대로 앉아있더라”는 스탈린의 농담을 협력자들은 역겨운 거짓말로 여길 뿐 아무도 웃지 않았다. 스탈린이 없는 공중화장실에서만 “거짓말”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비난할 뿐. 바야흐로 ‘농담의 황혼, 장난-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에 라몽은 다르델로에게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의 가치”에 대해 설파한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무의미는 절대적으로 명백하게, 절대적으로 무구하게, 절대적으로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어요.”

쿤데라에게 무의미는 농담마저 질식시키는 육중한 시대의 무게에 맞서기 위한 저항의 수단이다.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으므로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 온갖 의미들로 짓눌린 이 세계에서 무의미의 축제를 벌여야 하는 이유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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