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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안전 불감증과 인정기술사

입력
2014.07.3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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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는 건설기술진흥법을 개정해 인정기술사제도를 재도입했다. 인정기술사제도란 기술자의 기술등급을 특ㆍ고ㆍ중ㆍ초급 기술자로 구분하고, 이 중 특급기술자를 국가기술자격법에 의한 최고 기술자격인 기술사(Professional Engineer)와 동급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법으로 인정했을 뿐, 기술사를 사칭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2006년 12월 건설기술인력의 전문성 및 기술사 자격의 실효성 저하 문제로 학경력 인정기술사제도가 폐지됐다. 당시 건설공사의 발주 물량보다 현재는 훨씬 사업이 줄었고 안전에 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엄중한 이 때 국토교통부는 기술사 수가 부족하다는 맞지 않는 논리로 인정기술사제도를 다시 부활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 아닌가?

특급기술자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공공건설공사의 설계, 시공, 감리 등의 업무에서 책임기술자 역할을 하는 기술자들이다. 그 동안 국가기술자격법에 따른 최고 등급의 기술사만 진입이 가능했다.

1963년 우리나라는 경제개발에 착수하면서 미국, 일본의 기술사제도를 참고해 ‘기술사법’을 제정하고 제도를 정착시켰다. 1964년 제1회 기술사 시험에서 67명이 합격, 첫 기술사가 배출됐다. 이제 기술사 수는 4만 명을 넘어섰고 산업기술의 변화 주기가 짧아지면서 높은 수준의 기술 수요에 맞춰 매년 2,000여 명씩 배출되고 있다. 경제개발 초기 외자도입 심의에서 기술적 타당성 검토에 해당 분야 기술사들이 참여했다. 이후 지금까지 한강의 기적을 일으키는데 최고기술자로서 기술사들의 선도적 역할은 지대하다.

기술사는 4년제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장에서 6년 이상 경력을 쌓아야 응시 자격이 부여되는 가장 까다롭고 고난도의 시험을 치르는 최고기술 전문자격제도다. 국제적으로 정착된 제도다. 따라서 안전사고로 인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줄이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해 정부는 최고 전문기술자인 각 분야의 ‘기술사’ 활용책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

미국 등 선진국은 주요시설의 설계 시공 감리 업무를 수행하고 도면에 서명날인하는 책임기술자는 반드시 ‘기술사 면허증 소지자’여야 한다. 이는 건축물의 설계는 건축사, 의료 책임은 면허를 가진 의사에게 주어짐과 같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제도가 붕괴됐다. 인정기술사제도가 도입,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배, 페인트, 타일 등 단순 공정을 수행하는 기능사가 학사이면서 경력이 40년이면 75점으로 특급기술자 승급이 가능해 설계, 시공, 품질관리의 책임기술자 역할이 가능하다. 이들이 어떻게 구조를 알며, 안전을 책임지고 리스크 관리를 할 수 있을까? 자연환경기술사는 학력에서 85%가 고졸 미만의 점수를 받아 기술사이지만 특급기술자가 될 수 없다. 이런 황당한 법으로 인해 자연환경기술사들은 회사에서 언제 그만두라고 할 지 모르는 예비 실업자로 전락했다. 인정기술사제도의 폐해다. 공공시설물의 설계 시공 감리업무에서 안전을 책임져야 할 기술사들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 인정기술사제도를 옹호하는 것은 안전 불감증의 극치다.

기술사들은 16일 서울 역삼동 역삼공원 과학기술회관 앞에서 ‘국민안전 위협하는 건설기술진흥법 규탄 및 기술사법 선진화 촉구 2차 궐기대회’를 개최하고 거리행진을 펼쳤다. 앞서 5일엔 국회 앞에서 500여명이 모여 1차 집회를 가졌다. 이공계 최고 기술자격자들인 기술사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참으로 착잡하다. 우리사회에 병처럼 만연돼 있는 안전 불감증에 경고를 보내며 기술사제도 바로세우기를 촉구한다. 기술사들은 어떤 특혜를 요구하지 않는다. 보편적인 제도 확립을 갈망한다. 사회안전망의 시금석인 기술사제도 발전과 선진화에 부처를 초월한 정부의 바른 조치를 호소한다. 현행 건설기술진흥법의 건설기술자 인정기준은 기술사를 사칭하는 것에 불과하다. 인정기술사제도를 조속히 폐지하고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주요시설물의 설계, 시공, 감리 등의 업무는 전문기술자들이 수행할 수 있도록 건설기술진흥법을 제대로 개정해 주기를 바란다.

엄익준 한국기술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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