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경찰의 민주노총 사무실 진입을 비판하며 노정대화 중단을 선언하고 교섭의 장을 떠났던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고민하고 있다. 그간 여러 조건에 대한 고려와 요구, 고민이 있었지만 원칙론에 밀려 이뤄지지 못했던 선택이었다. 지난 29일 노사정위원장을 중심으로 노사정대표가 한자리에 모여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은 산적한 현안에 대한 통합적 해법 모색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노사정위원회는 최근 약 7개월 간 휴업상태였다. 노사 간 경쟁하는 사회경제적 의제들을 조직하고 당사자들의 이해를 조정하는 일이 주업임에도 주인이 찾지 않다 보니 객들만 웅성거렸다.
문은 열었으나 풀어야 할 과제와 다뤄야 할 이슈가 한 둘이 아니다. 우선 한국노총이 복귀의 조건으로 내 놓은 의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노총은 공공부문 회의체 설치를 노사정위원회 복귀 조건으로 제시했다. 2014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과정에서 정부가 기관의 ‘방만경영’을 비판하고 반강제적 시정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노조는 기업복지의 경우 대가를 지불하고 얻은 교섭의 결과물인데 이제 와서 결과만 놓고 비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대형 국책사업 떠넘기기를 통해 누적된 부채의 정리책임을 기관에 전가하는 것도 수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공공기관 노사 모두 동의할 수 있는 통합적 정상화의 해법 모색이 노사정위원회 정상화의 시작이 돼야 한다.
다음으로는 좀 더 본질적인 이슈에 대한 관심 요청이다. 우선 만성적 경기불황과 그로 인한 상시적 고용불안 문제는 노사정위원회의 우선과제다.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고 있는 금융산업과 불황으로 만신창이가 된 건설산업 등에서는 다운사이징이 빈번하다. 40대 중ㆍ후반에 직장을 떠난 이들이 자신들의 전문영역에서 새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근로 기회의 사회적 창출이 어렵다면 장차 대규모로 쏟아져 나오게 될 베이비 붐 세대들에게 노동시장은 절망의 공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하루 빨리 고용의 구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대안 모색이 절실하다.
다음 과제는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극복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소득 불균형은 상위 소득자들의 몫이 늘어난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하위 소득자들의 소득이 줄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저소득 취약 근로계층의 상당수는 사회안전망에서 배제돼 있다. 그 결과 소득수준, 고용기회, 문화수준, 생활조건 등에서 근로자들 내부 삶의 격차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최근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 교수는 ‘21세기 자본론’에서 소득 불균등을 자본주의의 지속성을 해치는 암과 같은 존재로 정의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미국과 함께 금융위기 이후 소득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된 나라로, 소비가 위축되고 경제가 말라가는 불균형적 악순환의 대표적 사례다. 이에 대한 해법 모색이 없다면 지속가능 사회로의 전환은 요원하다.
마지막은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 문제다. 지금 고용·노사관계 관련 이슈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통상임금, 근로시간, 비정규직, 정년연장, 구조조정 등 모두 난이도가 높아 답을 찾기 쉽지 않은 문제들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노조가 자기 교섭력에 기반해 이런 이슈들을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 조직부문 노동은 대기업 및 공공부문에 집중돼 있으며 300인 이하 사업장의 경우 조직률이 3%를 넘지 못한다. 요컨대, 단체협약의 적용범위가 확대되지 않는 한 단체교섭의 효력은 일부에 제한될 가능성이 크다. 사용자 단체 또한 대표성, 포괄성, 교섭력 등에서 제도적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상의 이슈들 또한 노사정위원회에서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제 노총이 복귀를 고려하고 있으니 문 열고 길 닦는 일은 정부와 노사정위원의 책임이다. 노사간 교섭은 크게 분배적 교섭과 통합적 교섭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파이를 나누는 것에, 후자는 키우는 것에 목표를 두는 전략이다. 노사정위원회는 특성상 통합적 교섭을 위한 의제 선정과 방법론 찾기에 고민해야 한다. 정치권의 사회경제적 이해조정 능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노사정위원회의 적극적 역할을 기대한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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