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마다 눈뜨기가 겁난다. 사람들이 뭉텅뭉텅 죽어나가는 뉴스들 때문이다. 말레이항공 여객기가 미사일에 맞아 폭발하더니 오키나와와 중국에서 태풍으로 여럿 죽었고 며칠 전에는 대만여객기가 비상착륙하다가 불타버렸다. 그리고 알제리 여객기도 추락했다. 올해 비행기 사고로만 650명이 넘게 죽었다고 한다. 더 심각한 것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 공격으로 하룻밤마다 사망자가 일 이백 명씩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병원과 학교도 폭격했다.
내가 바닷가를 걷거나 원고를 쓰거나 잠자는 동안 누군가가 고통스럽게 죽는다는 것, 이것 참 못 견딜 일이다.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나 세월호 참사를 외국에서 보는 시각도 비슷할 것이다. 일련의 사고들을 보면 우리 속의 악마성을 용케 막아오던 방어막이 깨져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 세상은 어른들이 유지해가고 있다. 그런데 이 모양이다. 아이가 이런 사건ㆍ사고의 원인에 대해 묻는다면 어른은 대답해줄 의무가 있다. 그런데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한단 말인가.
우리 어렸을 때도 질문이 많았지만 어른들은 제대로 대답해 주지 못했다. 그저 말이 많았을 뿐이다. 여수 진남제 축제 때 왜 경찰들이 대나무 막대기를 휘둘러 사람들을 때리는지, 왜 어른들은 맞고도 그냥 있는지, 왜 착한 사람은 가난한지, 왜 군인들이 국경을 지키는 대신 정치를 하는지, 왜 남자들은 밥과 설거지를 하면 안되는지, 욕을 줄기차게 하면서도 막상 그 대상을 만나면 왜 아무 소리 못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답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왜 세월호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는지, 광주 헬기추락참사로 순직한 소방대원 영결식장에서 왜 정치인과 공무원이 함께 웃는 얼굴로 기념촬영을 하는지, 왜 대통령이 국가를 개조하겠다고 나서는지, 기득권 안에서 생기는 문제의 해결책은 기득권 밖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지, 유병언 수사를 하면서 왜 경찰과 검찰은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지, 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원회 의장은 세월호 참사를 왜 교통사고라고 주장하는 지에 대해 우리는 대답해야 한다.
나쁜 어른은 아이가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대답해 주는 이들이다. 반대로 좋은 어른은 아이가 물어오는 것에만 대답해 주는 존재이다. 물론 매번 대답을 잘 해주기는 쉽지 않다. 애들은 종종 대답하기 곤란한 것을 질문 하니까. 하지만 그럴 때 좋은 어른은 모른다고 솔직히 인정하고 공부한 다음 알려준다.
육지로 일보러 나오면 길을 걷고 있는 고교 학생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이 애들에게 청소년기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기억될까, 생각하면서 몸을 떨곤 한다. 우리가 겪었던 청소년기의 대한민국과 큰 차이 없을 거라서 더욱 그렇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며느리 늙은 게 시엄씨, 라고 했다. 내가 예전에는 질문하는 아이였듯이 지금 애들도 곧 어른이 된다. 애들은 어른들 보며 자란다. 필요한 대답은 하지 못했던 예전 어른들을 내가 기억하고 있듯이 이 애들도 우리 세대를 무능한 존재들로 떠올리게 된다면 이거 정말 끔찍하다.
최소한 이 애들이 어른이 됐을 때는 대답을 해주는 존재가 돼야 한다. 나는 아직 좋은 어른이 못됐기에 아이들 질문에는 대답하기 어렵지만 대신 세월호 사건이 교통사고 아니냐는, 주호영 어른에게는 대답할 수 있다.
우리 마음속에는 충격을 견디는 임계점이 있다. 같은 속성을 가진 사건ㆍ사고라도 희생자 수가 많으면 당연히 충격이 크다. 우선 마음부터 견디기 어렵다. 그 임계점이 무너지면 자세와 책임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덕목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 변화가 잘못의 원인을 밝히고 따지게 된다. 그게 사람이다. 커다란 전쟁을 겪은 다음 우리 인류가 깊은 자성과 성찰의 시간을 가지면서 인간성 회복에 노력해온 것과 같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임계점이 무너졌기 때문이고 이번에도 슬그머니 넘어가 버리면 지금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또 터무니없이 죽어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후진국형 사고 때문에 위신이 깎일 대로 깎여버렸지만 사후 처리 과정이 무너진 수준을 회복시켜주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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