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두 번째 경제대국인 아르헨티나가 13년만에 다시 국가채무 불이행(디폴트) 사태를 맞았다. 2001년 디폴트 여파로 발생한 이번 사태는 그때 만큼 규모가 크지 않아 세계나 우리 경제에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르헨티나 정부 대표단은 30일 미국 뉴욕에서 NML캐피털 등 미국의 2개 헤지펀드와 채무 상환 협상을 벌였지만 결렬됐다. 헤지펀드들은 2001년 아르헨티나 디폴트 때 채무조정에 응하지 않고 전액 상환을 주장하며 소송을 벌여 지난 6월 미국 연방 뉴욕 맨해튼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얻어 냈다. 협상에서는 13억달러 전액 상환을 요구하는 헤지펀드와 이미 채무조정이 끝난 다른 금융기관들 수준으로 액수를 낮추려는 아르헨티나 정부간에 줄다리기가 벌어졌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번 아르헨티나 디폴트는 2001년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1,000억달러에 이르는 채무를 갚지 못한 아르헨티나는 92% 이상의 채권단과 협의를 거쳐 채무조정안을 마련해 빚을 290억달러로 줄였다. 하지만 이 조정안에는 이번 협상 대상이던 미국 헤지펀드들이 동의하지 않았다. 전액 상환 소송에 미 법원은 헤지펀드들도 채무조정에 합의한 채권단과 동일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채무조정에 합의한 채권단에만 지난 6월 30일까지 이자 5억3,900만달러를 지급하려던 아르헨티나 정부에 제동을 건 것이다.
결국 이 돈은 지불되지 못했고 미 법원은 아르헨티나에 30일간의 디폴트 유예기간을 줬다. 하지만 한 달 동안 협상을 진행하고도 양측은 결국 합의를 보지 못했고, 다른 채권자들에게도 나갈 이자도 지급하지 못하면서 다시 디폴트에 빠진 것이다. 악셀 키실로프 아르헨티나 재무장관은 협상 결렬 후 “과거 채무조정에 응한 다른 채권자들과 같은 조건을 제시했지만 헤지펀드가 거부했다”며 “아르헨티나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말하고 바로 귀국해버렸다. 협상 결렬 직후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푸어스는 아르헨티나 국채 등급을 ‘일부 채무불이행’으로 강등했다.
가뜩이나 경제난에 허덕이던 아르헨티나에 이번 디폴트가 악재인 것은 분명하다. 당장 올해 성장률이 1% 정도 낮아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2001년처럼 채무 변제 능력이 없어 맞은 디폴트가 아니어서 파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비해 외환보유액이 두 배나 많고 실업률(7.1%) 등 주요 경제지표도 훨씬 좋은 상태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도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틴 라가르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아르헨티나의 디폴트 영향이 “최소한에 머물 것”이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와 교역 자체가 적은 한국의 경우도 여파가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다만 디폴트 여파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파급되는 과정에서 신흥국 동조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우리와 교역ㆍ투자는 적지만 글로벌 시장을 통한 간접 영향권에 들 수 있어 외환시장이나 증시 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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