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에서 신제윤 금융위원장과 김영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설전이 벌어졌다.
김영환(김)=주택담보인정비율(LTV)와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여부가 중요한 문제인데, 주무관청인 금융위원장의 입장이 분명하지 않아요.
신제윤(신)=아니요. 제 입장은 항상 분명했습니다.
김=‘큰 틀에 변화가 없다’는 입장 말입니까?
신=(LTV, DTI를)금융정책 수단으로 쓰되 금융 안정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실물 지원기능을 강화해보겠다는 겁니다.
김=그러니까 예전하고 지금하고 입장이 똑같다, 이런 말씀이세요?
신=예, 그렇습니다.
부동산 규제를 “겨울에 입은 여름옷”으로 일축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당시 후보자)의 압박에 밀려 “LTV, DTI 규제의 큰 틀을 유지한다”던 원칙을 버린 것 아니냐는 공격에 맞서 신 위원장은 두 비율의 ‘합리적 조정’은 가능하다는 게 자신의 일관된 입장이라고 변론한 것이다. 실제 ‘LTV, DTI의 합리적 개선’은 박근혜 대통령이 2월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포함된 사항이고 신 위원장을 포함한 관료들은 당연히 이 표현을 입에 올렸다.
그러나 신 위원장이 예나 지금이나 ‘같은 말’을 하고 있다고 보는 이는 많지 않다. 그가 일찍부터 ‘합리적 조정’을 언급했을지언정 그 말이 지금 눈앞에 벌어진 규제 해제에 가까운 LTV, DTI 상향 조정을 뜻한다고 여기긴 힘들었다. 2월 대통령 발표 전날 부동산 대출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현오석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이 있자마자 그가 “경기대책이라기보단 금융소비자 보호 및 가계부채 해소 정책”이라고 토를 달았을 때 그가‘LTVㆍDTI 수호자’로 비쳐진 건 당연지사였다. 2월과 7월의 신 위원장은, 그러니까 같은 자구(字句)의 말로 전혀 다른 시그널(신호)를 보낸 것이다.
신 위원장은 억울할 수도 있다. 표현을 신경 써서 고른다고 해서 화자가 시그널을 뜻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므로. 어쩌면 표변의 혐의를 벗겨줄 알리바이를 만들었다고 안도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는 시그널은 곧잘 말을 은폐하거나 말 뒤에 숨곤 한다는 사실을 잘 아는 영리한 사람이다.
말과 시그널의 어긋남에 곤혹스러운 또 한 사람,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다. 4월 취임 직후 경기를 낙관하며 두 차례나 ‘금리 인상’을 언급했던 이 총재는 ‘경제적 참사’이기도 한 세월호 침몰 참사, 무람없이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최경환 경제팀과 잇따라 맞닥뜨리며 모두가 그의 입을 바라보는 상황에 처했다. ‘경기 하방 리스크’라는 명분을 찾고 “초보자의 실수”를 자인하는 강수를 쓰고도 통화정책 책임자의 권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그의 말에선 시그널만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다. 금리 향방, 중앙은행 독립성, 한은 내부 사정 등 온갖 것이 말이다.
사람들이 두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배경을, 이면을, 속내를 들여다보려 애쓰는 이유는 이들이 시장, 그것도 돈이 쏜살같이 움직이는 금융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정책결정권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말 한마디, 아니 시그널 한 조각에 돈의 흐름은 뒤바뀌고 수많은 시장참여자들은 희비가 갈린다. 두 사람의 곤경이 결과적으로 시장을 웃게 하긴 했다. 부동산 규제 장벽은 맥없이 무너졌고 금리 인하는 이제 시간문제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허나 웃기 힘든 사람들이 더 많다. 물가 안정, 금융 건전성 제고 등 경제 발전과 양립하는 가치를 수호하겠다던 기관장들이 정부의 경기 부양 드라이브에 화답하는 시그널을 보내면서도 애써 제 말의 하자를 감추는 일에만 연연하는 모습을 보자니 말이다. 두 기관은 독자성을 지키며 고유 임무를 수행하는 일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정부 경제정책이 급격히 한쪽으로 쏠리고 있는 요즘 같은 때라면 더욱 그렇다. 두 기관이 ‘재무부 남대문출장소’(한은) ‘재무부 이재국’(금융위)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예속성을 의심받던 것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이훈성 경제부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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