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보다도 선과 악의 구분을 요구받는 시대인 것 같다. 헤브라이즘의 윤리적 전통이 강고한 서구에서는 선과 악을 분리해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 보편화돼 있다. 사실 그들이 말하는 인식론이란 선악을 전제로 하는 인식의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동양의 고전은 선악이 아닌 ‘선’과 ‘불선’으로 나누는 것 같다. 그러니까 선인 것과 선이 아닌 것으로. 예컨대 인간은 벌레조차도 이로운 벌레와 해로운 벌레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인간이 만든 자의적 기준에 입각해 있다. 사람들이 발을 담그는 것조차 꺼리는 더럽고 끈적끈적한 늪은 악어에게는 최상의 안락한 서식지다. 늪을 장악한 악어의 자부심을 무시하고, 악어를 인간들이 안락하게 여기는 공기청정기가 갖춰진 베드룸의 대리석 돌침대에 올려놓으면, 악어는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이 거대한 선에 대한 오해와 무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선하지 않은 것이 죄가 아니라, 선인 것과 선이 아닌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죄이지 않을까. 다자이 오사무가 물었던 것처럼 죄의 반대말이 없다는 것이 그 방증이 될 수 있겠다. 죄의 반대편에는 무엇이 있는가? 지금 내 눈에 이 세상은 선이라 말할 수 없는 것과 악이라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서로 난삽하게 교미하고, 거기서 태어난 자식들이 값싼 서열을 다투고 있는 것만 같다. 우리 마음속에 기르는 악어를 더러운 돌침대에서 내려주고 저 늪으로 돌려보내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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