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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포∼송정역 4.8km 폐철로의 미래, 부산 시민이 함께 그린다

입력
2014.07.3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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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코스 개방 후 해운대 명물로 왼쪽엔 나무, 오른쪽엔 바다 '상쾌'

부지 소유자 철도시설공단 레일바이크 등 상업 개발 추진에 환경·시민단체들 강력 반대

부산시, 결국 시민 뜻에 맡기기로

동해남부선의 폐철로가 부산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바다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철길을 어떻게 가꿔 나갈지 시민들은 함께 뜻을 모으기로 했다. 부산=전혜원기자 iamjhw@hk.co.kr
동해남부선의 폐철로가 부산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바다를 끼고 있는 아름다운 철길을 어떻게 가꿔 나갈지 시민들은 함께 뜻을 모으기로 했다. 부산=전혜원기자 iamjhw@hk.co.kr

부산 해운대에 새로운 명물이 탄생했다. 해운대 백사장 끝자락인 미포에서 시작돼 송정역까지 이어지는 4.8㎞의 철길로, 지난해 12월 폐선돼 올해 3월부터 시민들의 걷기 코스로 개방된 동해남부선 폐선부지다. 잘 닦인 흙길도, 운치 있는 오솔길도 아니지만 사람들이 북적인다. 아이들은 줄타기하듯 레일 위를 아슬아슬하게 걸으며 장난을 친다. 어른들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바다를 한참 바라보다 고개 숙여 걷기를 반복한다. 파도가 바로 옆에서 철썩거리는 드넓은 바다를 끼고 철길 위를 걷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길 왼쪽으론 빽빽한 나무들이, 오른쪽엔 바다가 열려있어 상쾌함이 그지없다. 해질녘 레일과 침목이 깔린 자갈길을 터벅터벅 걷다 문득 고개를 들면 어느새 낙조에 물든 금빛바다가 출렁인다.

동해남부선은 부산 부산진구와 경북 포항을 잇는 145.8㎞ 철길이다. 일본이 우리 땅에서 여러 지하자원과 농산물 등을 빼돌리려고 건설했다. 1918년 10월 경주-포항에 먼저 철로가 놓였고, 1935년 12월 부산-경주 구간이 개통됐다.

부산의 동해남부선은 80년이란 긴 역사만큼 다양한 추억이 담긴 공간이다. 70,80년 대 많은 신혼부부들이 해운대에서 1박을 한 뒤, 동해남부선을 타고 경주로 떠나는 신혼여행 코스를 선택했다. 매일 새벽 기적 소리를 들으며 울산이나 기장에서 부산 도심으로 통학하던 고교생에겐 꿈을 실어 나른 길이었고, 짐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5일장에 나선 아낙에겐 고단한 일상의 휴식처였다. 해운대에서 나고 자란 향토사학자 주영택(76)씨는 동해남부선을 이렇게 회상했다.“꼬마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열차를 타면 쌀 같은 곡식을 보따리 아래 꼭꼭 숨겨야 했다. 일본인들에게 보이는 대로 뺏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섭던 공간이 까까머리 학창시절엔 달랐다. 먼 곳에 살던 첫사랑을 만나기 위해 거의 매일 열차를 탔는데, 이 철길을 걸으니 다시 설렌다.”

일부 철길이 폐선된 건 부산 부전역~울산 태화강역 구간 열차 복선화 사업 때문이다. 맞은편에서 열차가 오면 기다렸다가 운행하던 단선은 속도에 한계가 많았다. 이에 쌍방향 동시 운행이 가능한 복선으로 철길을 만들고 있는 것. 해운대 우동에서 기장군 동부산관광단지에 이르는 11.3㎞ 구간이 지난해 12월 2일 폐선됐다. 이 중 경치가 좋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미포~송정역 구간을 제외하곤 대부분 철로가 걷혔다. 복선화 사업은 2017년 마무리된다.

팔각지붕이 인상적인 옛 해운대역은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팔각지붕이 인상적인 옛 해운대역은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노선 변경으로 해운대역과 송정역이 자리를 옮기게 돼 기존 건물들은 이미 ‘은퇴식’을 가졌다. 해운대역은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로 변신했다. 이 역은 1934년 첫 영업을 시작했다. 지금 건물은 1987년 신축한 것이다. 무엇보다 팔각형 지붕이 인상적인데, 과거 팔각형 지붕 형태의 역사가 간혹 있었지만 모두 철거되고 현재는 이 곳만 남아있다.

공예품을 전시하고 체험할 수 있는 휴식의 공간이 된 옛 송정역은 유서 깊은 건물이다. 창고, 대지, 역사를 중심으로 좌우 철로 150m 등이 문화재청에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1940년 목조 단층 기와지붕 건물형태로 지어진 이 건물은 1930,40년대 당시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특히 창고 건물 외벽은 덩굴 식물을 모티프로 구불구불하고 유연한 선이 특징인데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건축 양식이라고 한다.

부산에선 미포-옛 송정역 구간과 옛 해운대역의 개발 방향을 놓고 올 상반기 내내 시끄러웠다. 부지 소유자인 철도시설공단과 부산시는 지난해 11월 만나 동해남부선 철도자산 효율적인 활용·관리 협약을 체결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여기에는 폐선된 철길을 활용한 산책로, 전망대, 녹지 조성 개발사업과 미포-송정 구간 레일바이크 수익 사업 등이 담겼다. 부산시는 대신 각종 행정상 도움을 약속했다. 철도시설공단은 민간 제안을 공모하겠다고 밝히며 상업 개발에 속도를 냈다. 부산시는 ‘그린 레일웨이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동해남부선 폐철길의 상업화를 반대하는 ‘해운대기찻길’이란 환경ㆍ시민연합체가 결성돼 각종 문화 공연과 퍼포먼스 등으로 여론 조성에 나섰다. 이 와중에 철도시설공단이 공중으로 전동 바이크가 달리는 ‘스카이라이더’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비난 여론이 커져갔다. 여기에 지역 언론사와 공기업이 개발 희망자로 나섰다는 사실이 전해져 반발은 극에 달했다.

폐철로의 달맞이재 터널 구간에서 한 시민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폐철로의 달맞이재 터널 구간에서 한 시민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거리 선전전이 확산되고, 예술 단체까지 가세하는 시민 문화 운동이 이어졌다. 이들은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하이라인 파크'를 자주 모델로 언급했다. 이곳은 1930~1980년대 로어웨스트사이드에서 운행되던 고가 화물노선 폐선 부지에 설치된 시민공원이다. 철로가 폐선되자 주민들이 '프렌드 오브 하이라인'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친 시민적 공간 개발을 요구했다. 그 결과 2010년 덱이 깔린 길을 산책하며 철로를 구경할 수 있고 길 곳곳에 공연장이 마련된 시민 공원이 탄생했다.

국내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전남 광주의 시민단체는 2000년 8월 폐선된 광주-여수선 광주 도심부(광주역~효천역 8.2㎞) 통과 구간을 시민공원을 조성했다. 2003년 시작된 공사는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도움 속에 지난해 3월 마무리됐다.

부산시도 조만간 ‘시민 계획단’을 구성한다. 지난 6ㆍ4선거 때 폐선부지 활용방안을 시민의 뜻에 맡기겠다고 한 서병수 시장이 공약을 지키기 위한 후속 조치다. 시민 계획단은 해운대구 중·좌·송정동 주민을 비롯해 시민단체 회원, 교수 등 20여명으로 구성된다. 9월에는 시민 계획단이 참여하는 원탁회의가 열린다. 부산시는 최근 시의회와 해운대구의회 등에 인사 추천을 요청했다. 기적 소리가 사라지자 스르르 문이 열린 동해남부선 옛 철길. 빽빽한 고층 건물에 멀미가 난 도시인들은 혹여 개발 광풍에 비밀스러운 문이 다시 닫힐까 봐 오늘도 이 철길을 찾아 걷고 또 걷는다.

부산=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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