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부양책 실효성 논란 있지만
뭐든 해 본다는 신뢰 효과가 더 커
한은도 금리인하 주저하지 말아야
박근혜 정부 1기 경제팀이 인색한 평가를 받은 건 특별히 뭘 잘못해서가 아니었다. 아무리 더듬어봐도 뭘 했는지 딱히 기억나는 일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으로 시작되는 정책들이 계속 쏟아지긴 했다. '파티는 끝났다' '손톱 밑 가시' 같은 인상적인 카피도 있었다. 하지만 근사한 포장 속 내용물은 결국 늘 듣던 얘기들 뿐. 신선함도 추진력도 존재감도 느낄 수 없었다는 것, 1기 경제팀이 실망스러웠던 진짜 이유다.
사실 경제팀이 박수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요즘처럼 쪼들리고 팍팍할 때엔 더 그렇다. 가만히 있으면 '대체 뭘 하고 있나'는 아우성이 이어지고, 그래서 어떤 정책이라도 내놓으면 '알맹이가 없다'는 핀잔을 듣게 된다.
해도 욕을 먹고 안 해도 욕을 먹는 참으로 고약한 처지이지만, 그래도 뭐든 해보고 욕을 먹는 게 책임 있는 정부의 자세다.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그냥 손 놓고 있다면 그건 정부도 아니다. 정책 실패 보다 정책 실종이 정부에겐 더 큰 죄악이다.
이 점에서 막 출발한 2기 경제팀에겐 일단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물론 '최경환표' 경제정책들이 반드시 좋은 패키지란 뜻은 아니다. 지난주 발표된 경기종합대책은 '만성질환에 단기처방 뿐'이란 비판을 충분히 받을 만했다. 내수는 살리지도 못한 채 건전성만 해칠 위험도 엿보인다.
하지만 이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경제의 숨통 좀 트여보려고 뭐든 시도한다는 것, 그럼으로써 정부가 무력감을 떨쳐내고 경제활력을 위한 강한 의지와 행동을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경제주체들에겐 긍정적 신호가 된다. 어차피 불균형이 고착화한 경제구조를 단번에 깰 명약은 없는 마당에, 뭐든 해보려는 정부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는 정부의 신뢰감 차이는 생각보다 훨씬 크다.
정부의 거시정책방향이 명확해진 이상 이제 경제계의 시선은 한국은행으로 향한다. 과연 한은도 부양기조에 동참해 금리인하 카드를 뽑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시장은 8월 인하에 베팅하는 분위기이지만 한은의 선택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경기판단 말고도 중앙은행 독립성 명분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어서다. 만약 이번에 금리를 내린다면 '실세 부총리의 눈치를 봤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뒷말이 따르든 인하가 필요하다면 그렇게 하는 게 정답이다. 현 2.5% 기준금리가 정해진 건 작년 5월. 그 때 예상했던 2014년의 한국경제와 15개월이 지난 지금 한국경제의 현실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다. 당시 기준금리는 성장률 4%대의 견고한 경기회복을 전제로 세팅됐던 것인데, 실제 경제흐름이 이에 미치지 못했다면 금리수준은 재설정되는 게 마땅하다. 만약 지금 손대지 않으면 기준금리는 '2.5%의 새장'속에 아주 오랜 기간 갇히게 될지도 모른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파이터' 이미지는 크게 변했다. '강성 매파' 중앙은행인 독일 분데스방크조차 '임금인상=인플레 주범'이란 금과옥조를 깨고, 임금상승률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을 정도다. 하물며 인플레 압력마저 미미한 우리나라에서 금리를 내리는 게 절대 망발이 아니라고 본다.
독립성 시비는 크게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중앙은행의 뚝심은 나중에 금리를 올려야 할 때 확실히 보여주면 된다. '올리기 힘드니까 웬만해선 내리지도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건 고유 정책수단을 스스로 포기하는 패배적 발상이다. 금리의 정책효과가 갈수록 약화된다고 자조하는데, 그건 한은 자신이 인상이든 인하든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금리를 인하해야 할 이유나 인하하지 말아야 할 이유나, 찾기 시작하면 둘 다 백 가지쯤은 나올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내려도 욕 먹고 안 내려도 욕 먹는 상황이라면, 지금은 내리고 욕을 먹는 게 낫다. 실효성은 적고 다소 후유증이 따르겠지만, 하루하루 힘겨워하는 국민들에게 중앙은행이 뭐든 해보려고 애 쓴다는 걸 보여주는 신뢰 효과 하나만으로도 그런 부작용쯤은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다.
이성철 부국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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