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줄인 말

입력
2014.07.30 20:00
0 0

세상이 참 빨리 바뀐다. 어제 아침 한국일보 ‘까톡 2030’에 실린 ‘일코’를 보며 든 생각이다. ‘일코’가 ‘일반인 코스튬플레이(만화나 게임의 주인공, 스타를 분장하여 흉내 내는 놀이)’를 줄인 말이라는 설명만으로 대강의 내용은 짐작이 갔다. 20여 년 전 어학연수 차 일본에 갔을 때 가장 눈이 휘둥그러졌던 게 바로 일본판 코스튬플레이인 ‘코스푸레’였다. 당시 절정의 인기를 자랑하던 록밴드의 리더를 흉내 내어 괴기스러운 화장과 옷차림을 한 10ㆍ20대 소녀들이 주말이면 도쿄 하라주쿠 일대를 장악했다.

▦ 10년 전쯤 국내 젊은 세대도 코스튬플레이를 즐긴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큰둥했다. 그 원형이라 할 일본의 ‘코스푸레’에 대한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일본 대중문화는 저급하고 도색적이라는 선입견이 뇌리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 모방의 주된 대상이 인기 연예인인 ‘코스푸레’는 그런 선입견에 딱 들어맞았다. 도색산업 종사자가 고객의 기호에 따라 다양한 직업을 상징하는 옷차림을 하는 ‘코스푸레 영업’이 성행하던 때이기도 했다. 나쁜 이미지가 중첩했으니 좋은 인상은 불가능했다.

▦ 아버지 시절과는 전혀 다른 청소년기를 거친 두 아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화장이나 옷차림에 대한 편견은 많이 덜었다. 클럽문화뿐만 아니라 그 위 세대의 사교춤이나 콜라텍 문화에 대해서도 덤덤히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시각 이미지는 보는 눈을 조금만 달리해도 자극성이 줄어드는 모양이다. 이와 달리 말의 인상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일코용어사전’에 소개된 각종 줄인 말 설명에 잠시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실소했다.

▦ 5년 넘게 ‘청소년은어사전’ 등의 앱을 활용하고, 대학생들이 즐겨 쓰는 줄인 말을 일부 알아듣게 되면서도, ‘왜 이 따위 말밖에?’라는 속상함을 느끼게 된다. 새로운 말이 확장ㆍ통용력을 가지려면 문법처럼 어느 정도의 법칙성을 가져야 한다. 영어의 ASAP나 SOB처럼 단어의 첫 글자를 따거나, 일본어의 ‘코스푸레’처럼 앞머리의 한두 음절을 따는 게 좋은 예다. 최근 SNS와 인터넷에 번지고 있는 양담배 ‘말보로(Marlboro)’의 이름 탄생을 둘러싼 애절한 사랑이야기처럼, 뻔한 허구이더라도 무언가 이야기를 담은 줄인 말이라면 더욱 좋겠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