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자수를 배경으로 한 여명이 새털구름을 붉게 물들이며 열대의 상큼한 아침을 예고한 건 딱 30분뿐이었다. 태양이 동해(한국의 동해가 일본해가 아니듯 베트남의 동해는 남중국해가 아니다)의 수면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햇살도 공기도 바로 한낮이다.
베트남 여행은 많이 보겠다고 욕심부리지 않는 게 좋겠다. 대중교통은 부족하고, 수시로 중앙선을 넘나드는 오토바이와 차량은 위험하고, 관광지에서도 그 흔한 안내책자 하나 구하기 쉽지 않다. 2% 부족한 게 베트남 관광의 매력이다. 최대한 게으르게 움직이고 느리게 즐기는 게 제격이다. 현대적인 도시 다낭을 중심으로 황궁의 도시 후에, 동화 같은 도시 호이안 등 관광과 휴양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베트남 중부지역을 돌아봤다.
파스텔톤으로 물드는 동화 같은 도시 호이안(Hoi An)
단언컨대 호이안 관광은 어스름 녘에 시작해 밤 풍경을 즐기는 게 최선이다.
베트남 전통의 붉고 노란 등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풍의 형형색색의 등이 골목을 밝히기 때문이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은 늦은 저녁 무렵 파스텔톤으로 본색을 드러내고, 이때쯤이면 붉게 물들었다가 파르스름하게 사그라지는 하늘색이 멋지게 배경을 장식한다. 좁은 골목길과 마름모꼴로 대칭을 이룬 하늘 양편으로 건물의 윤곽이 도드라지면 도시는 유럽의 작은 시골마을이 되기도 하고 동양의 오래된 중세도시가 되기도 한다. 흐드러진 열대의 꽃 향기 아래로 시클로와 오토바이, 원뿔 모양 전통 모자인 ‘논(non)’을 쓴 상인들 틈으로 관광객들이 북적이면 그제서야 도시는 베트남의 호이안이 된다.
인구 9만의 작은 도시 호이안은 주민보다 관광객이 많을 정도로 배낭여행객의 천국이다. 구 시가지 좁은 골목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미술품과 공예품 가게, 길거리 카페까지 정신 없이 사진을 찍다 보면 어느새 관광객도 스스로 호이안의 풍경임을 깨닫게 된다.





16~17세기 호이안은 베트남의 국제 무역 중심지였다. 매년 수많은 외국 상선들이 들어와 4~6개월간 머물렀다. 화교와 일본인, 네덜란드와 인도인까지 마을을 형성하고 정착했던 곳이다. 자연히 다양한 형태의 거주시설과 사원 등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각 공동체 구역은 세력의 판도에 따라 서로 분리되기도 하고 겹쳐지기도 하며 서구적이면서도 동양적인 독특한 풍경을 빚어냈다.
호이안은 무역풍과 계절풍의 축복으로 형성된 도시지만, 바다를 오가는 상인들에게 바람은 여전히 두려운 존재였다. 가장 상징적인 건물은 아치형 다리에 지붕을 얹은 ‘일본 다리’이다. 일본 상인들이 건립했지만 다리 중간의 사원은 중국식이다. 폭풍과 홍수를 막는 신을 모시고 있다. 다리 양쪽에는 개와 원숭이 조각상이 있어 재앙을 일으키는 괴물이 움직이지 못하게 지키고 있다. 건물과 교각은 은은한 조명을 받아 밤에 더욱 돋보인다.
호이안은 베트남 전쟁을 겪으면서도 포격에서 빗겨나 도시 원형이 잘 보전돼 있다.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도시 전체가 유적, 응우옌 왕조의 황궁 후에(Hue)
시내 한 가운데 위치한 황궁으로 들어가는 길은 혼잡스러운 만큼 혼란스럽다. ‘크레용 팝’ 헬멧을 쓴 오토바이 행렬이 해자(垓字·성 밖으로 둘러 판 못)를 넘는 다리를 거리낌없이 드나든다. 명색이 세계문화유산이고 도시의 상징인 문화재인데 이래도 되는 걸까? 지도를 보면 이해가 쉽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흐엉강을 앞에 두고 가로세로 각각 2.5km, 높이 5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 안에는 지금도 주민들이 살고 있다. 다만 성 안에서도 최후의 방어선인 둘레 2km 의 ‘금지된 도시’만이 차량이 통행할 수 없다. 이 곳을 제외하면 성 안의 모든 구역은 왕실 기관과 일반 시민들의 거주지가 겹쳐 있는 셈이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황궁이고 유적지다. 후에는 그래서 1993년 베트남에서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후에 황궁은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Nguyen) 왕조(1802~1945)의 황실이다. 동양의 전통인 음양오행설과 풍수지리를 고려해 지었다. 남문 정면에 황제가 정사를 집전하던 디엔타이호아(Dien Thai Hoa·태화전)가 자리하고, 왼편에는 각 왕의 위패를 모신 테미우(The Mieu·태묘)와 황실 행사를 준비한 히엔람칵(Hien Lam Cac·현임각)이 있다. 우리로 치면 왕과 왕족들이 거처하던 여러 궁궐과 종묘를 합쳐놓은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원래 궁 안에는 40여 채의 왕족 처소와 수많은 궁정 기관들이 있었지만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포격으로 대부분이 파괴됐다. 이 후에도 공산주의 정권하에서 봉건시대의 유적으로 치부되다 근래에 와서야 관광자원으로 복원하고 있다. 건물 장식은 기본적으로 청·황·백·적·흑 등 오방색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현기증이 날 정도로 진황색이 두드러진다. 여기에 빛 바랜 붉은색과 비취색 장식과 문양이 더해져 실제보다 더 고풍스러워 보인다. 뜬금없이 붉고 느닷없이 노란 꽃을 피워내는 열대의 꽃나무를 닮았다.
조선시대 왕릉이 서울 주위에 산재해 있듯이 응우옌 왕조의 황제 능도 흐엉강을 따라 흩어져 있다. 민망(Minh Mang)황제, 카이딘(Khai Din) 황제 등의 묘지가 대표적이다. 응우옌 왕조에서 실질적으로 마지막 황제였던 카이딘 능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1931년 완성됐다. 산자락을 깎아 3단계로 오르며 지은 능은 프랑스식 구조물에 베트남식 장식을 입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용 문양을 기본으로 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검은 때가 끼어 마치 고대 유적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거대 케이블카 타고 보는 해변 휴양도시 다낭(Da Nang)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끈적끈적한 습기도 사라지고 더위에 노곤한 몸에도 생기가 돌았다. 한여름 베트남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다낭의 바나(Ba Na)산 정상에서는 가능하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다는 5,801m 길이의 케이블카가 해발 200m에서 1,500m까지 관광객을 실어 나른다. 약 30분이 걸린다. 때로는 열대 원시림 위를 날고, 때로는 구름을 가르며 이동한다. 중간중간 지지대를 지날 때마다 살짝 떨어지는 느낌은 짜릿한 고소의 공포를 되살린다. 정상에서 보면 멀리 다낭 시내와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산 중턱에 걸린 구름이 군데군데 비를 뿌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회기반시설이 부족한 베트남의 실정에 어울리지 않게 거대한 규모의 케이블카를 만든 이유는 따로 있다. 정상에 놀이공원이 있기 때문이다. 규모도 작지 않다. 유럽의 거대한 성을 본 딴 건물 안에는 자이로드롭에 3D극장, 주라기 공원과 슬라이드레일까지 갖췄다. 부대시설로 호텔과 빌라에 대규모 사찰까지 자리잡았다. 1900년대 초부터 휴양지로 개발했다지만 이곳이 국립공원이라는 사실을 되새겨보면 의아하기도 하다. 베트남이 사회주의공화국이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바나산 정상에서 한낮의 더위를 잊고, 저녁에는 다낭 해변을 찾았다. 북쪽과 동쪽을 합해 해변 길이만 59km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은 동쪽 해변이다. 워낙 길어 사람들이 많아도 북적대는 느낌이 없다. 특히 베트남 전쟁 당시 출격하기 전날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미군들이 먹고 마시고 즐겼다는 미케 해변이 그 중에서도 붐비는 곳이다. 작년 다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중 서방 국가로는 미국인이 가장 많았다는 점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호이안으로 이어지는 해변엔 관광객을 겨냥한 고급 리조트가 즐비하고 지금도 계속 지어지고 있다. 중부지역 최대 관광 도시인 만큼 외관도 깔끔하다. 중앙분리대가 설치된 왕복 6~8차선의 대로도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들다. 도시 발전의 상징인 용다리 부근에서 도심을 동서로 가르는 한강(서울 한강과 이름이 같다)의 야경도 볼 만 하다.
다낭·후에·호이안=최흥수기자 choissoo@hk.co.kr
[여행메모]
● 다낭은 지난해 기준으로 중국인 다음으로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도시다. 인천공항에서 베트남항공이 주3회, 아시아나항공이 주2회, 대한항공이 매일 운항하고 있다.
● 하나투어(바로가기)와 한진투어(바로가기)가 다낭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 다낭 공항에서 후에 황궁까지는 북쪽으로 약 100km, 고속도로가 없어 2시간 이상 걸린다. 호이안까지는 남쪽으로 약 30km, 1시간 이내에 닿을 수 있다.
● 다낭과 호이안은 시에서 암호가 필요 없는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한다. 장소에 따라 연결과 속도가 들쭉날쭉하다. 모든 호텔과 식당에도 자체 와이파이가 있다. 암호를 물어보면 친절히 가르쳐준다.
● 걸어서 여행하다 보면 시원한 맥주가 절로 당긴다. 길거리 카페에서는 우리 돈 1만원, 식당에선 2만원 정도면 3~4명이 즐길 수 있다.
● 화폐단위가 당황스럽다. 원화에 20을 곱한 수준. 1000원은 대략 2만 동이다. 달러로 바꿔가면 호텔에서 베트남 동으로 환전할 수 있다.
● 다소 흐린 날씨에도 햇살이 강하다. 얇은 긴 소매 옷이나 토시, 챙이 넓은 모자가 필수다.
● 차량과 오토바이가 멈추지 않기 때문에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조심해야 한다. 현지 가이드는 앞만 보고 가는 게 안전하다고 하지만 적응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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