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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아이들은 친구들이 죽어 간 근본 이유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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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아이들은 친구들이 죽어 간 근본 이유를 물었다

입력
2014.07.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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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90도로 기울어 창문이 바닥이 되고 출입문이 머리 위에 있던 상황, 아이들은 캐비닛을 밟고 서로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복도로 나가 줄지어 비상구로 향했다. 승무원의 도움도, 해경의 적극적인 구조도 없었다. 비상구로 파도가 덮쳐 아이들이 배 안쪽으로 쓸려 들어갔지만 “손 내밀면 닿을 거리”에 있던 해경은 배에 오르지 않았다. 아이들이 “안쪽에 친구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말해도 해경은 바라보기만 했다.

28, 29일 이틀간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광주지법 형사11부 심리로 열린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공판에서는 침몰 당시의 참혹한 광경이 고스란히 재연됐다. 참사의 충격과 상처를 안은 채 용기를 내 증언대에 선 단원고 생존 학생 23명의 입을 통해서다. 아이들은 친구와 부모, 선생님의 손을 꼭 잡거나 하얀 토끼 인형을 가슴에 안고 법정에 들어섰고, “마지막으로 방에서 나올 때 눈이 마주쳤던 친구가 빠져 나오지 못하고 바닷물에 잠기는 모습이 떠올라” 울먹이면서도 또렷한 목소리로 침몰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큰 줄기는 검찰 수사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내용이지만, “해경이 위에서 (배 안)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거나 “갑판에 올라왔을 때 구해달라며 우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등 구조과정의 문제점을 짚은 새로운 증언도 나왔다. 검찰이 해경의 구조실패에 대한 본격수사를 통해 철저하게 밝혀야 할 내용들이다.

아비규환 속에서도 친구를 챙겼던 아이들은 법정에서도 침착하고 의연했다. “처음부터 안내만 정확히 했어도 많이 살 수 있었다”고 지적했고, 일부 네티즌의 악성 댓글에 상처 받았다는 여학생은 “수학여행 가다가 사고 난 게 아니라 사고 후 대처가 잘못돼 죽은 건데 교통사고로 표현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배에서 먼저 탈출한 선원들이 엄벌에 처해지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처벌도 중요하지만 친구들이 왜 그렇게 돼야 했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밝혀달라”고 호소했다.

지난 15일 안산의 학교에서 서울 여의도 국회까지 1박2일 도보행진을 한 생존 학생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호소하며 17일째 단식중인 유족들이 바라는 것은 참사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국회 국정조사와 특별법 논의는 여야의 정쟁, 특히 ‘청와대 구하기’를 지상목표로 삼은 듯한 새누리당의 몽니에 붙들려 헛바퀴만 돌고 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한 축인 유병언 일가 비리 수사도 유씨가 숨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며 난관에 빠졌다. 정부가 약속한 ‘국가혁신’도 말만 무성할 뿐 별다른 진척이 없다. 그 사이 일부 보수세력은 “유족이 벼슬이냐”며 상처를 헤집고, “세월호는 이제 잊자”는 주장까지 서슴지 않는다. 세월호 사고가 잘못된 대처로 참사로 번졌듯이, 참사 이후 100여일의 허송세월이 대한민국을 더 깊은 수렁으로 빠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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