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1960년대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 당시 일제가 한반도에서 가져간 문화재 가운데 서지적 가치가 큰 ‘희소본’ 대부분의 목록을 숨겼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한일회담 관련 일본측 자료의 전면 공개 청구소송을 벌여 온 일본 시민단체 ‘한일회담 문서 전면 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이 최근 홈페이지에 공개한 항소심 판결문에서 확인됐다. ‘모임’의 정보공개 청구소송에 대해 도쿄지법은 2012년 10월 궁내청 소장 서적 목록을 비롯한 관련 문서 일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문서의 전면적 공개가 한일관계에 파문을 부를 수 있다며 항소했고, 도쿄고법은 25일 이를 받아들여 관련 문서의 비공개를 결정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63년 당시 일본 정부는 한국과의 문화재 반환협상에 앞서 전문가를 동원해 궁내청 보관 서적(총 163부 852책)에서 ‘희소본’을 가리는 등 한반도 반출 문화재의 전모를 조사했다. 그런데 외무성은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한 진술서에서 “희소본 목록과 함께 문화재 입수 경위와 취득 가액 등 지금까지 한국에 밝히지 않은 부분이 다수 포함돼 있어 공개하면 한국이 당시 한국에 돌려준 문화재의 선정 방식을 문제삼고, 반환 재교섭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65년 일본이 한국에 반환한 문화재 1,431점에는 짚신과 막도장 등이 들어 있어 일본이 귀중한 문화재는 따로 빼돌렸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판결문을 통해 일본 정부는 관련 자료가 모두 공개될 경우 한국이 문화재 반환 재협상을 요구할 정도로 65년 반환 당시 많은 문화재를 감추었음을 자인한 셈이다. 우리 정부가 언제든 문화재 추가 반환을 요구하고 나서도 일본 정부는 할 말이 없게 됐다.
그러나 65년 문화재 반환 협상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일본에 새롭게 제기할 요구는 한결 정교해야 한다. 우선은 일본 내 한국 문화재의 전모와 반출 경위를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 개인 소장품까지 모두 파악하는 데는 어려움이 크겠지만 적어도 궁내청이나 국공립박물관 소장 문화재는 하나라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2011년 ‘도서협정’을 통해 돌려받은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궁내청 소장 도서 150종, 1,205책에 포함된 5종 107권의 ‘유일본’과 63년 일본 정부의 ‘희귀본’을 어떻게든 대조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이번 판결문을 통해 일제의 약탈적 문화재 무단 반출 실태가 일부 드러났지만, 그렇다고 일본 내 한반도 문화재 모두를 ‘약탈’의 결과로 여기는 인식은 지양해야 한다. 그래야 요구에 힘과 정당성이 제대로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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