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탁구 꿈 품고 중국서 귀화
이번이 대표선수론 메이저 첫 출전
"2%부족? 내 실력 모두 보여줄 것"
2008 베이징올림픽 당예서(33), 2012 런던올림픽 석하정(29ㆍ대한항공)…. 한국 여자 탁구는 그 동안 귀화 선수들이 국제 대회에서 에이스 노릇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콩, 싱가포르 등 다른 아시아국과 마찬가지로 귀화 선수들이 토종 선수들의 기량 발전을 자극하는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두 달 뒤 안방에서 열리는 인천아시안게임은 전지희(22ㆍ포스코에너지) 차례다.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을 너무 재미있게 봤다는 스물 두 살의 앳된 소녀를 28일 태릉선수촌에서 만났다.
순탄치 않았던 귀화 과정, 한국에도 못 올 뻔
중국 허베이성 출신 전지희는 일곱살 때부터 탁구를 시작했다. “몸이 너무 약해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라켓을 집어 들었다. 왼손 셰이크 전형인 그는 온 국민이 탁구를 친다는 중국에서도 기대주였다. 2007년 강원 평창에서 열린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선 여자 단식 2위까지 했다. 하지만 “파워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들었고 동료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렸다. 이 즈음 당예서, 석하정의 뒤를 잇는 새 얼굴을 찾아나선 김형석(52) 여자대표팀 감독을 만났다.
“소속팀 감독이시기도 한 김형석 감독님께서 많이 가르쳐 주셨다. 부족한 부분(파워)을 집중 보완했는데 지금은 한 단계 기량이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음식도 맛있고 적응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중국에서 전지희를 처음 본 김 감독은 그대로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2명의 선배들에 비해 기량이 떨어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2% 부족한 것 같다. 죄송하지만 다른 선수를 보러 가겠다.” 김 감독의 입이 떨어지기 무섭게 열 여섯 살 해맑은 소녀가 분하다는 듯 맞받아쳤다. “지금은 떨려서 내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일주일만 훈련하게 해달라. 그때도 안되면 정말로 포기하겠다.”
김 감독은 “강원 횡성 전지훈련에 전지희를 초청했다. 체육관이 부서질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탁구를 쳤다”며 “저런 마음가짐이면 성공한다고 판단했다. 지금도 (전)지희가 나태해졌다고 생각되면 ‘너 횡성에서는 안 그랬는데’라고 해준다”고 웃었다.
“한국어 익히게 해준 드라마, 이젠 안 봐요”
티엔민웨이가 지금의 ‘전지희’ 이름을 얻은 건 2011년 1월이다. 어렵지 않게 귀화 시험을 통화했다. 인터뷰 동안 우리 말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그에게 비결을 물었다. “드라마를 많이 봤다. 한국 말을 배우기 위해 여러 번 돌려 본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특히 공유씨가 나온 ‘커피프린스 1호점’을 정말 재미있게 봤다. 시험 통과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뒤이어 나온 말은 영락없는 20대 초반 소녀다. “지금은 일부러 드라마를 보지 않고 있다. 한 번 보면 빠져 나오기 힘든 재미가 있다. 아, 그런데 김수현 씨 나오는 드라마 ‘별 에서 온 그대’는 봤다. 중국에서도 워낙 유명해서…. 어쨌든 당분간 안 볼 거다.”
인천에서 메달 1개만 땄으면
전지희는 귀화하자마자 국제대회에서 우승해 한국 탁구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2011년 7월 모로코 라바트에서 열린 국제탁구연맹(ITTF) 프로투어 모로코 오픈에서 일반부 여자 단식과 21세 이하(U-21) 단식 우승을 휩쓸었다. 당시 랭킹은 82위였지만 내로라 하는 강호들을 잇따라 격파했다.
경험이 쌓인 전지희는 인천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 여자부에서도 1위에 올랐다. 월등한 기량으로 종합 전적 8승1패를 거뒀다. 인천 아시안게임은 그 동안 국제탁구연맹(ITTF) 귀화선수 규정에 묶여 세계선수권에 나가지 못한 그가 처음 서는 메이저 대회. 전지희는 “메달 1개는 꼭 따내고 싶다. 단체전, 여자 복식에서 동료들과 좋은 호흡을 유지해 원하는 성과를 내겠다”며 “떨리면 어떨까 걱정도 되지만 언니들이 옆에서 너무 많이 도와주고 있어 나도 의지하면서 경기를 치를 것이다. 내 기량을 온전히 발휘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함태수기자 hts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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