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공무원도 우리 기술과 열정에 감명, 개도국 첫 사례라 인접국으로도 확대 가능
국내총생산(GDP) 세계 69위인 남아시아의 개발도상국 스리랑카는 2012년 체계적인 환자관리를 위해 병원의료정보시스템인 HHIMS(Hospital Health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를 10여개 병원에 도입했다. e-스리랑카 전략의 일환이었지만 ICT(정보통신기술)가 일천한 상황이라 시스템 개발은 전적으로 해외 업체에 의지했다.
그러나 선진국의 의료정보시스템은 접수부터 진료차트 관리까지 모두 수기로 이뤄지던 스리랑카 병원의 현실과 맞지 않았다. HHIMS는 현장에서 외면당하며 대부분 정착하지 못했지만 수도 콜롬보에서 동쪽으로 56㎞ 떨어진 아비사웰라(Avissawella)병원만은 예외다. 이 병원에서는 지난 1월 환자들이 가장 붐비는 외래진료에 의료정보시스템이 가동되며 접수-진료-투약-차트관리의 전 과정이 전산화됐다. 연말까지는 응급의료센터를 포함한 병원 전체로 시스템이 확대된다.
HHIMS를 현지 실정에 맞게 뜯어 고쳐 정상화를 이룬 것은 ‘구원투수’로 투입된 국내 전문가들이다. 아비사웰라병원은 완전하게 의료정보시스템이 도입된 스리랑카의 첫번째 병원이자, 우리에게는 개도국에서 의료정보시스템 전수에 성공한 첫 사례다.
29일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에 따르면 아비사웰라병원 의료정보시스템 구축사업은 스리랑카 정부의 HHIMS가 사장돼가던 2012년 12월 시작됐다. 연간 150만명이 찾는 300병상 규모의 대형병원이지만 응급시설이 없던 아비사웰라병원에 2009년 응급의료센터를 지어준 인연으로 재단이 의료정보시스템까지 도와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공모를 거쳐 선정된 인제대 황원주 정보통신공학과 교수와 일산백병원 김훈 응급의학과 교수로 이뤄진 팀은 스리랑카로 급파됐다.
현지 사정을 파악한 이들은 국산 프로그램을 고집하지 않고 HHIMS를 큰 폭으로 수정하며 우리의 운용경험을 가미하는 방향으로 틀을 잡았다. 이미 10여 개 병원에 깔려 있는 HHIMS를 활용하는 게 장기적으로 스리랑카 정부에 이점이 많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도 두 가지 난관이 앞을 가로 막았다. 컴퓨터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병원 차원의 반발과 시스템 유지ㆍ관리였다. 병원 종사자들의 저항은 컴퓨터 등 하드웨어 지원과 지속적인 설득, 사용자 교육 등으로 해소가 가능했지만 유지ㆍ관리를 위한 별도의 인원과 비용은 골칫거리였다. 스리랑카 정부가 사실상 HHIMS 운영에서 손을 놓은 것도 외국 업체 측이 요구한 막대한 사후 유지ㆍ관리 비용 때문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황 교수와 김 교수는 현지인을 전문인력으로 키우는 ‘묘안’을 짜냈다. 콜롬보 대학을 졸업한 남학생 한 명을 인제대 대학원에 진학시켜 의료정보시스템을 교육한 것이다. 이 학생은 HHIMS 수정과 스리랑카 출장 등에 동참하며 현재 아비사웰라병원의 의료정보시스템을 다룰 수 있는 유일한 스리랑카인이 됐다. 스리랑카 보건부는 석사과정을 마치면 이 학생을 핵심인력으로 고용하기로 했다.
1년여의 노력 끝에 의료정보시스템이 적용된 올해 1월부터 6개월간 아비사웰라병원에서 외래진료를 받은 환자는 4만2,000명을 돌파했다. 수기 기록이 필요 없는 장점을 인식한 병원 종사자들은 연말까지 예정된 응급의료센터, 검사실, 입원병동 등 전 병원 전산화에 협조를 아끼지 않고 있다. 최근 아비사웰라병원에서 우리 교수들을 만난 스리랑카 보건부 공무원은 “그동안 많은 계획과 정책이 ‘종이’ 위에만 있었다. 현실에서 이렇게 잘 돌아가는 것은 처음이라 큰 감명을 받았다”며 놀라워했다.
스리랑카 보건부는 콜롬보 남쪽 도시 탕갈(tangalle)에도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아비사웰라병원 시스템을 점차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국제보건의료재단은 다른 개도국의 병원에도 아비사웰라 병원의 성공사례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김훈 교수는 “단순히 ‘우리 의료정보시스템을 수출하면 된다’는 생각은 틀렸다”며 “개도국의 의료제도와 진료 행태에 맞게 철저히 현지화하고, 자력으로 운용할 수 있는 역량까지 키워줘야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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