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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의 길 위의 이야기] 혹성탈출

입력
2014.07.29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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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성탈출’ 시리즈의 원제목은 ‘Planet of the Apes’, 즉 ‘원숭이 행성’이다. 1960~70년대 나온 오리지널 시리즈는 원숭이들이 다스리는 미래 지구 이야기이고, 요 몇 년 사이 나온 프리퀄 시리즈 두 편은 그 원숭이들이 지구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니 ‘혹성탈출’이라는 번역 제목은 핀트가 잘 맞지 않는다. 내용 상 ‘탈출’과는 무관할뿐더러 이제는 ‘혹성’을 대신해 ‘행성’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인 지도 오래다. 하지만 사자성어처럼 입에 착착 감기는데 따져 무엇 하리. 이 제목이 그럭저럭 이나마 통하는 건 딱 한 편, 1968년에 나온 첫 작품이었다. 불시착한 행성이 미래의 지구인 줄 몰랐던 인간남자가 원숭이들의 감옥에서 도망치려는 장면을 길게 담고 있으니, ‘혹성’에 ‘탈출’을 꿰어 붙일 만하다. 당시 이 영화를 수입한 사람들은 내심 흥행에 도움이 되길 기대하며 이런 제목을 달았겠지. ‘탈출’과 무관한 속편이 연달아 만들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명절마다 브라운관을 타며 ‘혹성탈출’이라는 단어가 입에 익숙해지리라는 것도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나는 애초부터 ‘원숭이 행성’이라는 제목으로 배급되어 영화 내용과 보조를 맞추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 시리즈에 쓱 끼어들어 뿌리 내린 엉성하고 생뚱맞은 한국식 작명이 제법 흡족하기도 하다. 아니었다면 어디서 ‘혹성탈출’이라는 말을 얻었겠는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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