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 비리척결에 대한 저항이 볼썽 사납다. 정부는 지난 5월 ‘스포츠 4대악’ 근절을 위해 관계부처 합동수사반을 출범 시키며 대대적인 사정에 나섰다. 내달 말까지 가동되는 한시적 기구지만 체육분야에 검찰과 경찰은 물론 국세청까지 합류한 범 정부차원의 합수반이 꾸려지기는 1948년 정부 수립이래 처음이다. 그만큼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실려 있어 큰 기대를 안고 출범했다. 정홍원 국무총리 역시 수 차례에 걸쳐 체육계 비리를 거론하며 강도 높은 경고음을 냈다.
주무부처 문화체육관광부는 말할 나위도 없다. 문체부 장관이 보름 가까이 공석인 와중에도 김종 2차관과 우상일 체육국장이 개혁 전도사를 자처하며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이들은 터무니 없는 오해와 음해에 시달리면서도 개혁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수십년 묵은 체육계의 암 덩어리를 도려내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호위무사’와 같은 결기가 느껴진다. 그 덕분인지 2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 체육계 전반에 뿌리깊은 비정상적인 관행들이 하나 둘씩 정상화의 수순으로 접어 들었다는 평가가 많다.
때를 같이해 각종 투서들이 합수반에 날아드는 등 억눌려왔던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국제대회에서 메달만 획득하면 협회나 연맹의 ‘불투명한’ 행정쯤이야, 반쯤 눈 감아주던 기존 관행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선수들 스스로 ‘메달 만능주의’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대표팀에 선발된 선수들이 자기가 어떻게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렸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할 정도다. 태극마크를 우습게 여기고, 좌지우지 할 수 있다고 믿는 ‘검은 손’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탄력을 받고 있던 개혁 작업이 뜻밖에도 국민체육진흥공단 서 모 펜싱감독의 자살로 궤도수정 압력을 받고 있다. 서 감독은 수 차례 합수반에 소환돼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빌미로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앞세운 펜싱계 인사 50여명이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합수부의 ‘무리한 수사’가 서 감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간접 살인”운운하고 나섰다. 서 감독이 죽음을 택함으로써 결백을 호소했다는 뉘앙스다. 평소 구악(舊惡)으로 지목된 실세가 기자회견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그러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의 목소리는 전혀 다르다. 감시의 사각지대에서 곪을 대로 곪은 썩은 고름이 터졌다는 반응이다.
어디 펜싱뿐이랴. 여자 컬링은 또 어떤가. ‘카드깡’으로 운영비를 충당해온 사실이 적발되는가 하면 폭언과 성추행 논란을 빚은 지도자는 자격정지와 영구제명 처분을 받은 상태다. 지난 2월 소치동계올림픽을 통해서 국민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해 호평을 받은 여자 컬링의 이미지가 한 순간에 무색해졌다.
사실 체육계는 암암리에 종목을 가리지 않고 보조금 빼돌리기가 횡행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조직 사유화, 심판 판정 부정, 특정 학맥의 전횡도 단골 메뉴다.
정부가 본격 메스를 들이대자 “체육계를 비리 온상으로 여긴다”며 여론을 호도하는 어처구니 없는 목소리마저 그럴듯하게 포장돼 회자되고 있다. 정치, 경제 등 타 분야의 거악(巨惡)들에게 칼날을 겨눌 일이지,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은 우리를 왜 못살게 구느냐는 투다. 후안무치가 따로 없다.
시계를 3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불법 베팅사이트와 연계된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이 연일 언론의 메인뉴스로 오르내린 것이 이맘때다. 당시 신문을 펼쳐보면 ‘발본색원’ ‘일벌백계’라는 단어가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그때와 지금이 어느 정도 달라졌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뒤이어 야구 배구 농구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터져 나왔다. 체육계 비리척결 작업에 마침표를 찍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마침 문체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하마평이 무르익고 있다. 프로필을 보면 거의 스포츠와 무관한 인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개혁의 적임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당부하고 싶다. 장관 후보자는 국회 청문회장에 설 때 체육개혁에 대한 소신을 먼저 밝혀 달라고 말이다.
최형철 스포츠부장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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