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경제성장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았던 ‘고용 없는 성장’ 시대를 지나 취업자는 늘지만 성장이 미미한 ‘성장 없는 고용’국면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섬유, 의복 등 1970년대 주력산업이던 노동집약형 경공업이 활기를 되찾는 ‘퇴행적’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이 29일 발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이후 우리나라 취업자 증가 수는 연 40만명 안팎으로, 2000년대 평균 32만명보다 높은 수준이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에도 상반기에만 취업자가 60만명 늘었다. 그러나 2000~2007년 연평균 4.7%를 기록하던 경제성장률은 금융위기 국면을 통과한 2011년 이후 연 2.8%로 낮아졌다.
고용 증가 속도가 성장률을 앞서는 현상은 취업자 1인당 노동생산성 통계로 확인된다. 금융위기 이전(2000~2007년) 연평균 3.3%였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위기 이후(2011~13년) 1.1%로 급감했다. 같은 기간 근로시간당 노동생산성 증가율도 4.5%에서 1.9%로 떨어졌다.
‘성장 없는 고용’은 세계적 현상이지만 우리는 정도가 심각하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한국 노동생산성 증가율 하락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12번째. 그러나 우리보다 순위가 높은 국가 중 다수는 소득수준이 낮은 동유럽 국가나 경제난을 겪고 있는 그리스, 핀란드 등인 점을 감안하면 주요 경제국 중 한국의 노동생산성 둔화세가 가장 큰 수준이다.
보고서는 금융위기에 따른 교역 위축으로 수출 산업, 특히 제조업이 타격을 받은 것을 노동생산성 둔화의 요인으로 먼저 꼽았다. 철강, 정유, 전자, 화학 등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는 자본집약적 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노동집약 산업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은 또 다른 요인. 섬유산업 생산은 2010년 이후 성장세로 반등했고 섬유, 가구, 목재 등 경공업 생산기지의 해외이전 현상도 크게 줄었다. 국내 공장의 인력 수요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고령자 및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증가, 내수 부진으로 인한 서비스ㆍ건설업의 성장 정체도 생산성 낮은 고용 증가의 요인으로 꼽았다.
보고서는 성장세가 미진하더라도 고용이 빠르게 증가하는 것은 저소득층 구매력 증가, 소득분배 개선 등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한정된 시장 수요를 많은 취업자들이 나눠 갖는 구조인 ‘성장 없는 고용’은 장기간 지속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결국 저수익에 따른 기업들의 고용 축소, 자영업 과도경쟁에 따른 폐업 사태 등으로 귀결될 것이란 얘기이다. 일본 역시 장기불황 초기에 서비스산업 취업자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경기침체 효과를 상쇄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성장과 고용이 같이 떨어진 전례가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이근태 수석연구위원은 “고령화, 저출산에 따른 고용부족 시대가 곧 도래하는 것 등을 감안할 때 우리 경제의 주력 생산요소가 자본에서 노동으로 회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서비스업 분야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업종을 빠르게 늘려 시장을 키우고 규제완화 등을 통해 내수시장을 창출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