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월호 참사 본질 벗어난 유대균 선정보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드러난 우리사회의 부끄러운 민낯 가운데 언론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사실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어처구니 없는 오보, 눈앞의 경쟁에 매달려 인권을 경시한 보도 등이 잇따르면서 ‘기레기(기자 쓰레기)’라는 비판까지 들었다. 여러 언론이 참담한 심정으로 반성문을 썼다. 그 동안 언론은 얼마나 달라졌나. 최근 유병언씨의 장남 대균씨와 그의 도피를 도운 박수경씨 검거 이후 상당수 방송과 신문들이 선정성 경쟁이라도 하듯 쏟아낸 기사들을 보면, 이런 자문조차 낯 뜨겁다.
현상수배 됐던 대균씨가 검거된 지난 25일 대부분의 방송은 인천광역수사대, 인천지검으로 압송되는 모습을 생중계했다. 대균씨의 검거는 유씨의 사망, 차남 혁기씨와 핵심 측근들의 장기간 해외 도피로 난관에 빠진 유씨 일가 비리 수사를 풀어갈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뉴스 가치가 큰 사안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그의 범죄 혐의 액수는 99억원으로 일가 전체 횡령ㆍ배임액 2,400억원의 극히 일부분이며, 특히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경영에 직접 간여한 증거는 없다. 검찰이 검거 직전까지 “자수하면 선처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가 수사의 큰 줄기에서 보면 ‘깃털’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방송들은 대균씨의 혐의나 향후 수사 전망 등을 차분하게 짚어주기는커녕 초췌한 모습으로 압송되는 장면을 밤 늦도록 되풀이해 보여주기에 급급했다. 특히 도피 조력자 박씨를 ‘미모의 호위무사’로 지칭하며 더 집요하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 후 ‘관계’와 ‘사생활’, ‘치킨’ 등으로 키워드가 요약될 정도로 황당한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종편 채널은 “유대균, 소심한 목소리로 뼈 없는 치킨 주문”, “호위무사 박수경은 사실 겁쟁이” 같은 기사를 ‘단독’이란 타이틀을 달고 내보냈고, 좁은 오피스텔에서 3개월 넘게 같이 지낸 대균씨와 박씨의 관계, 엄마이자 아내인 박씨의 사생활을 미주알고주알 캐는 막장 기사들이 쏟아졌다. 언론의 품격을 따지기에도 민망할 지경이다.
미국의 독립언론인 이지 스톤은 생전 젊은 기자들에게 “내가 가진 정보가 쓰레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늘 염두에 두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집요한 검증을 강조한 말이지만, 조각 사실들의 경중과 맥락을 따지지도 않은 채 내지르고 보는 상당수 국내 언론들의 행태를 되짚어보는 데도 유효하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검경 수사와 감사원 감사, 국회 국정조사가 이뤄졌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의혹들이 쌓여있다. 언론이 진실을 규명하지 못한 것은 능력과 의지 부족으로 돌릴 수 있을지 몰라도, 선정적 보도로 여론을 호도해 사안의 본질을 덮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에는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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