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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태극기 달고 올림픽 첫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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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태극기 달고 올림픽 첫 출전

입력
2014.07.2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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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7월 29일 개막한 제14회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의 김성집선수가 역도에서 동메달을 따냈고(왼쪽) 이화여중 박봉식은 올림픽에 출전한 최초의 여자선수가 됐다. 독립기념관제공
1948년 7월 29일 개막한 제14회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의 김성집선수가 역도에서 동메달을 따냈고(왼쪽) 이화여중 박봉식은 올림픽에 출전한 최초의 여자선수가 됐다. 독립기념관제공

1948년 7월 29일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 20여 일을 돌고 돌아 기어이 여기까지 왔다. KOREA라는 영문 국호 아래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이 경기장까지 들어서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또 비행기를 타고 우리는 경기장에 간다. 우리의 행로는 더웠다 추웠다가 따뜻하고 선선하다. 우리 선수들이 이러한 악조건을 극복하느냐 못하느냐가 승리를 좌우할 것이다. 사력을 다해 싸우고 돌아오겠다”

‘조선’선수단 기수를 맡아 제14회 런던올림픽 참가를 위해 한국을 떠나며 손기정씨가 남긴 말이다. 36년 베를린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그의 명성은 높았지만 가슴에는 일장기를 달고 뛰어야 했으니 나라 없는 설움에 한이 맺혔을 터였다.

엄살도 유람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돈이 없어 그 많은 도시를 에둘러 가야 했다. 6월 21일 서울역을 출발해 부산에 내린 선수단은 일본 요코하마에서 대형 여객선을 갈아타고 상하이를 거쳐 홍콩에 닿았고 이때부터 다시 기나긴 비행 여정에 올랐다. 값싼 완행 비행기를 타고 방콕 캘커타 카이로 로마를 돌아 암스테르담에 내린 선수단은 프로펠러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이륙과 착륙을 거듭한 뒤에야 런던에 입성했으니 이미 몸은 파김치로 변해있었다

사실 정부수립도 되지 않은 나라가 단일국가로 올림픽에 참가한다는 것 자체가 기적적인 일이었다. 해방되던 45년, 조선체육회와 올림픽대책위를 구성했지만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조선체육회장 여운형을 필두로 당시 영어를 제일 잘한다는 전경무가 부위원장에 선임돼 미국과 협상을 시작했다. 미군정하에서 전경무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올림픽 출전희망이 가시화될 즈음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 47년 6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IOC총회에 가입신청서를 들고 가던 그가 비행기 사고로 추락해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하늘이 도왔을까. 전경무를 대신해 재미교포 이원순이 스톡홀름으로 급파됐고 우여곡절 끝에 신생국 조선은 IOC가입이 승인됐다. 하지만 이제 경비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올림픽복권 발행. 전씨의 사진을 넣은 액면가 100원 복권은 불티나게 팔렸고 67명의 선수단은 비로소 태극기를 품고 장도에 오를 수 있었다.

경기가 시작된 후 기대했던 낭보는 마라톤 대신 역도에서 날아들었다. 75kg급에 출전한 30세의 김성집선수가 이집트선수를 제치고 동메달을 따낸 것이다. 국제대회에서 KOREA라는 이름을 달고 따낸 최초의 메달이었다. 복싱 플라이급의 한수안선수도 동메달을 추가했고 투원반에 출전한 여중학생 박봉식은 앳된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로부터 66년, 오늘날 스포츠강국으로 자리한 대한민국의 바탕에는 그들의 땀과 열정이 배어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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