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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욱의 길 위의 이야기]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들)

입력
2014.07.2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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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나치 친위대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체포되어 이스라엘의 법정에 선다. 유대인 학살의 죄를 유대인의 나라에서 심판 받는 자리니 입지가 오죽했을까. 그러나 그는 자신이 ‘살인죄’를 저지르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나는 유대인을 죽인 적도 혐오한 적도 없다… 심지어 어떤 유대인은 존경하기도 했다… 국가의 명령을 받아 ‘추방’과 ‘이송’을 수행했고, 복종하는 것은 나의 의무였을 뿐이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도 않았고 딱히 반유대주의자도 아니었으니까. 그는 명을 곧이곧대로 받들어 유능하게 실천하는 것을 제 삶의 가장 큰 미덕으로 여겼을 따름이었다. 아이히만은 많은 이들을 아연하게 했다. 혐오와 광기에 사로잡혀 대량학살을 지휘한 냉혈한이거나 악의 화신쯤 될 줄 알았더니, 평범한 관료 마인드를 지닌 고만고만한 이웃이었던 것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 재판을 취재하여 출간한 책에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예루살렘 법정의 독일인 아이히만. 그런데 요즘은 이 제목이 자꾸 비유적 의미로 읽힌다. 가자 지구에 공습을 명령하는 예루살렘의 많은 유대인들도 일종의 아이히만이 아닐까. 나는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에게 손대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혐오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선량하고 착실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들)이 무섭다. 어디 예루살렘만의 문제일까. 한국에도 아이히만(들)이 창궐하는 시대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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